공간 디자이너 현원명, ‘공간을 위한 공간’

디자인 / 전미희 기자 / 2020-11-04 12: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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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디자이너 현원명은 어느 때에 자신의 색을 버려야 할지 혹은 지켜야 할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버리고 채우는 과정을 반복하며 자신이 작업해 온 공간에 저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 한옥 레스토랑 '가가'의 밤풍경

 

 

▲ 한옥의 상부 구조 이미지를 조명으로 극대화했다. 

 

▲ 한지 문의 창살을 연상케하는 벽면 디자인 

 

▲ 쓰임의 집중을 높이기 위해 단순함을 지향했다.

 

한옥을 떠올릴 때 나무를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인엑스디자인의 현원명 소장은 정해진 규칙을 반드시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일반적인 방법에서 탈피하는 것이 그만의 틀이라고 말한다.

한옥 리뉴얼 작업을 맡았을 때도 그랬다. ‘북스쿡스(Books Cooks)’와 ‘가가(假家)’, ‘지미재’는 같은 한옥임에도 주는 여운은 각각 다르다. 목재 대신 금속을 사용하거나 먹을 입힌 한지를 택하는 등 공간마다 다른 소재와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에 정답이란 없었다.

의뢰인을 위한 디자인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뛰었던 공사 현장부터 건축디자인사무소 소장에 이르기까지 그를 거쳐 간 건축물은 수도 없이 많다. 27여 년의 경험은 그의 어깨에 제법 힘을 실어 주는 경력이 됐다. 그럼에도 현원명 소장은 자만하지 않는다. 그는 공간의 가치가 빛을 발하는 방법을 꿰뚫고 있었다.

“저는 주로 상업공간을 디자인하기 때문에 제 고집보다는 의뢰인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공간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지 분석하는 데에 집중해요. 그리고 거기에 새로운 해석을 더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말처럼 인엑스디자인의 작업은 철저하게 의뢰인에 맞춰 진행된다. 명리학과 관상을 배워야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현 소장에게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빨리 캐치하는 일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여전히 어려운 점이다.

동시에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상대를 설득한다. 가끔은 의뢰인이 의아해 할 정도로 신선한 의견을 제시할 때도 있다. 그는 작업을 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이 주관적이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결국에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결과물을 완성한다. 대화와 설득, 자기 객관화의 과정으로 그는 의뢰인으로부터 무한한 신뢰를 받는 디자이너가 됐다.
 

▲ 한국적 디자인을 극상징한 카페 '무아' 창문 디자인

▲ 단조로운 색밸런스가 주는 안온함.

 

▲ 통목의 계단, 유기적 공간분할은 현원명 소장의 디자인 특징이다.

 

▲ 정교하면서도 은유적 공간감이 돋보이는 '무아'

 


공간을 빛내는 은유

첫 작업이었던 ‘페이퍼3(PAPER3)’와 최근 작업물인 ‘무아(無我)’ 사이에는 인엑스디자인이라는 공통점만이 존재한다. 두 곳은 힙합의류 매장과 전통 디저트 카페라는 전혀 다른 카테고리에 속하는 공간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만의 디자인 철학 때문이다.

“표면적인 부분에서 제 색을 드러내지 않아요. 제 생각만 주장하다보면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공간의 용도와 목적을 드러내는 거예요.” 디자이너는 욕심을 내지 않고, 오로지 공간에 집중 한다. 그것이 현원명 소장이 말하는 자신의 색깔이자 인엑스디자인의 방향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공간 중심이다. 현 소장은 특정 소재나 컬러에 집착하지 않으며, 어떤 곳이냐에 따라 익숙하지 않은 소재를 사용하기도 하고 낯선 방식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한식 레스토랑인 ‘가가’에서는 공간의 프라이빗한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선계(仙界)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목재의 따뜻한 성질과 상반되는 소재인 금속을 사용해 낯선 세계를 표현했다.

반면 같은 한옥임에도 주거공간인 ‘지미재’는 과감한 변화보다는 기능적인 면에 초점을 맞췄다. 사용자의 편리함을 위해 한옥의 기본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쪽을 택한 것이다. 소장은 또 다시 한옥 작업을 하게 되더라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다. 매번 새로운 것을 채워 넣을 것, 현원명 소장이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새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제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과 가치관들을 다 버리고 시작해요. 공간의 성격과 그곳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맞춰 방향과 콘셉트를 잡아가죠.”

그는 항상 새로운 은유법으로 공간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국수전문점인 한가락은 ‘면’의 모습을 형상화했고, 갤러리 ‘예목’은 그림에 쓰이는 표구를 기호로 사용했다. 직접적인 표현 대신 메타포로써 공간의 목적을 드러내고, 잔잔하지만 오랫동안 머무는 공간에 대한 잔상이 이를 설명하도록 했다.

 

▲ 젓가락을 벽의 장식으로 사용해 공예적 공간을 연출한 '지미재'

 

▲ 숟가락의 공예적 장식성이 돋보인다.

 


과거로부터 지혜를 얻다

인엑스디자인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커다란 오디오와 드럼이 방문객을 맞는다. 밴드 연습실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잔잔한 재즈가 흐르는 그의 작업실은 사무공간이자 휴식공간이었다. 음악이 주는 영향이 상당해 보였지만, 소장은 그저 취미생활뿐이라며 손을 저었다. 대부분의 영감은 경험에서 얻는다고 덧붙였다.

“많이 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해요. 세월이 흐를수록 내공이 쌓인다고 하잖아요. 이 직업에서는 관록을 무시할 수 없어요.” 학생 때는 지루하기만 했던 건축답사도 지금은 커다란 자양분이 되었음을 지난해 ‘무아’를 작업하며 느꼈다.

전통 디저트를 전문으로 하는 카페인만큼 의뢰인은 우리의 문화가 공간에서 읽히기를 바랐다. 현 소장은 기와나 서까래가 아닌 색다른 소재가 필요했다. 그때 그는 누각(樓閣)을 떠올렸다. 부석사에 다녀온 경험 덕분이었다. 이야기는 저절로 전통 건축으로 흘렀다.


“담양 소쇄원만 해도 그곳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적어도 10번은 가봐야 해요. 봄, 여름, 가을, 겨울, 비올 때, 눈 올 때, 해 뜰 때, 해 질 때 등 말이에요. 우리 전통 건축은 시간과 날씨에 따라 모습이 다 달라요. 선조들이 건축이나 공간을 세웠던 기준은 자연이기 때문이죠.”

한때는 그에게도 이러한 얘기들이 진부하게만 들렸다. 연륜과 경험이 쌓이자 어느 순간 우리 것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때서야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실감하게 됐다. 우리 것을 알고 전통 문화를 대변해야 그것이 세계적으로도 설득이 된다는 얘기다. 그는 앞으로 자신의 작업 방향이 우리 것을 계승하고 재해석하는 쪽으로 나갈 수도 있다고 말한다. 물론 직접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말이다.  

 

▲ 인엑스디자인 현원명 소장

“한국적인 정서에서 온 것임에도 아주 미니멀하고 단순한 표현이 될 수도 있어요. 우리의 수묵화가 지닌 여백처럼 말이에요.”

사진 스튜디오꼬레, 인엑스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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