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 아티스트 안드레아스 : 그들의 얼굴

Art / 배우리 기자 / 2018-03-14 11: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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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텅 비었다. 그런데 포즈도 텅 비어있다. 할 수 없이 다시 그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다시 텅. 그리고 멍. 그리고 반짝.

 

사람 조각은 어렵다. 사람이라는 소재의 역사가 워낙에 유구하다 보니 새로움이 좋음 대신 새로운 평가 기준으로 대치된 동시대미술에서 사람을 ‘잘’ 조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을 그리고 사람을 조각한다.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가장 잘 이해할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보편적인 예술 언어를 발굴하기에도 가장 좋은 소재다.


결핍된 얼굴

 

 

안드레아스는 이탈리아 출신의 젊은 목조각가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순수예술을 배웠지만 그가 나무 조각에 확신을 갖고 본격적으로 작업하기 시작한 계기는 2006년 미네아폴리스 디자인대학에서 킨지 아카가와의 조각 수업에 참여하게 되면서부터다. 킨지의 나무 조각―훨씬 추상적이지만―에 감명을 받는 그는 그때부터 나무를 예술적인 탐구를 위한 표현의 재료로 써오고 있다고 한다.


2007년에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관찰하고, 나무에 옮겼다. 배우기 위해, 전시를 위해 세계를 누비며 활발하게 살아온 그지만 그가 표현해내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히마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창백한 얼굴에 굳게 다문 입술, 눈은 뜨고 있지만 공허하고 먼 시선, 거기에 밝은 눈동자 속 작은 검은 동공은 그 시선을 더 비어 있도록 만든다. 실물 크기의 인물상은 더욱 그렇다. 꿈은 많지만 매번 불확실함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 지친 사람들의 얼굴은 겁을 먹었거나 아니면 아예 포기한 얼굴들을 하고 있다. 텅 빈 얼굴을 마주하고 같이 울어야 할지 파이팅을 해줘야 할지 보는 사람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얼굴들이다.

 



부족한 몸


얼굴에 아무 표정이 없듯, 몸에도 표정이 없다. 축 늘어진 어깨 밑으로 내려오는 팔과 꼭 붙인 다리로 그저 부동 차렷 자세다. 누구도 팔을 들어 올리거나 다리를 움직이거나 하지 않는다. 얼굴을 보면 그런 포즈는 당연한 거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팔다리가 있는 사람들은 조금 낫다. 안드레아스가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손과 하반신이 없다. 애초에 움직일 여지를 박탈당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떨어져 나온 다리는 홀로 고공에 있기도 하다. 작가가 자신이 창조하는 사람들에게는 희망과 가능성을 절대 주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음모를 제기할 수도 있다. 꽤 많은 작품이 있는 ‘자신’에 대해서도 그는 마찬가지로 부족함을 부여한다. 그나마 팔다리가 온전하게 있는 작품은 얼굴도 볼 수 없도록 관람자의 시선 위 벽에 걸려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목은 ‘forget me not'. 그는 창조한 인물들은 “solo tale"을 속삭인다.

 



그래서 남은 가능성


조각의 미덕, ‘생생함’은 폐기한 지 오래인 그 조각들을 그는 사진을 통해 한 번 더 박제시킨다. 조각은 사진에서 또 다른 작품이 된다. 사람들은 한 번 더 ‘크롭’ 당한다. 안 그래도 잘린 사람들이 한 번 더 토막 나는 것이다. 얼굴이 더 가까워진대도 그 핏기 없고 공허한 얼굴에서 죽음 같은 정지만 더 확실해질 뿐이다. 이제는 아무 움직임이 없다. 이제 정말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는 화면에서 오히려 그들의 팔다리를 상상할 수 있다. 공허한 시선은 언젠가 거두고 다시금 걸어갈 것이라는 것도. 다시 걷기 위해서는 공허는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니 말이다. 안드레이 타프코프스키의 영화 <잠입자>의 걸을 수 없던 소녀가 마지막 장면에서 걷는 것처럼.(멀어진 카메라는 딸을 목마 태운 아버지를 보여준다.)

 

 

 이런 가능성으로의 전환은 작가의 것일 손(과 팔)만 남은 ‘U턴’의 ‘Shapeshifter'가 보여준다. 얼굴과 몸은 사라졌지만 작가는 손으로 어떤 것이든 만들 수 있고,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다. 그의 머리는 잠시 몸에서 떨어져 깊은 잠을 자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건 세상을 바꾸는 가장 창의적인 사람들이 검은 담즙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밝은 것을 보기 위해 얼굴에 잠시 어둠을 드리운다. 그 시간이 지나면 정수리에서는 빛이 솟아나고, 나무가 자라난다. 안드레아스는 이탈리아의 한 갤러리에서 새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얼굴의 고민의 겹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나무를 붙여 합판으로 만들고 깎아낸 작품이다. 그는 오늘도 눈을 감고, 나무를 틔운다.

 


 

 

▲ 안드레아스
안드레아스(Andreas Senoner) | 1982년 이탈리아의 볼차노에서 태어난 안드레아스 세노네르는 플로랑스순수예술아카데미와 스페인 발렌시아의 세인트찰스예술학과에서 수학했다. 세계를 돌며 배움을 구하고 2007년 돌아온 그는 프랑스, 미국, 스위스 등 세게 주요 국립미술관에 초대받고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플로랑스와 산타 크리스티나 사이에서 작업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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