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신기철 : 불안, 그 찰나의 기록

Art / 백홍기 기자 / 2018-03-14 10: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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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불안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입니까! 하루에도 몇 번 씩 고개를 드는 불안감 없이 살고 싶지만, 사는 동안 친구 아닌 친구로 곁에 존재하는 ‘불안’을 한 사진가가 찍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 누가 들으면 코웃음 칠 것 같은 말이라도 누군가는 상처가 된다.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외부 요소에 의해 쉽게 감정이 요동치는 사람을 두고 요즘 사람은 ‘유리맨탈’, ‘두부맨탈’이라고 지칭한다. 이처럼 우리의 감정과 감정을 느끼는 마음은 늘 안정과 불완전 사이에 불안을 안고 산다. 그리고 전쟁, 기아, 전염병 등에 시달려온 인류 역사에 불안이 사라진 날도 없다. 신기철 작가는 불안이란 모든 사람과 필연적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 관계가 발생하는 ‘어떤 심리적인 지점’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놨다.


낯설지만, 익숙한 풍경


사진에도 언어처럼 여러 화법이 있다. 그 가운데 작가가 선택한 건 중의적인 화법이다. 허무주의를 표현하는 바니타스적인 기호들도 의도적으로 뺀 이유가 “작업이 읽히는 데 단순함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서”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떠나 전시하는 순간 “사진을 어떻게 해석할 지는 관람자의 몫”이라고 한다.


그가 의도한 중의적인 표현은 사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다만, 고전미술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가 부족하면, 작가의 의도를 알아채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거나 모른 상태로 스쳐갈지도 모른다. 사진을 어떻게 읽느냐는 그가 말한 대로 관람자의 몫이다.

 

 

 

전시장에 걸린 사진은 낯설지만, 익숙한 풍경이다. 왜 그럴까. 바로 사진 안에 존재하는 가구 때문이다. 비록 흰 천으로 모습을 감췄지만, 그것조차 테이블이라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작가는 의자와 선반, 테이블 등 우리가 늘 접하는 가구 위에 다양한 사건을 연출해 그만의 ‘불안’이라는 장면을 담아냈다. 그런데 ‘가구와 불안’은 모순적인 부분이 있다. 그것은 가구가 주는 안정감 때문이다. 적절한 비율과 안정적인 구조는 가구가 갖춰야할 기본적인 조건이고, 사물이나 물건을 안전하게 올려두거나 보관하는 게 가구의 쓰임이다. 그런데 그 위에 물이 담긴 컵이나 용기, 촛대, 접시 등을 이용해 위태로운 장면을 연출했다. 그러한 안정적인 기물 위에 불안정이라는 요소 때문인지 불안은 더욱 확장돼 각인된다.


사진에서 핵심 키워드는 두 개라고 볼 수 있다. 가구라는 사물이 주는 안정감과 당장에라도 떨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순간의 불안감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핵심 키워드가 있다. ‘일상’이다. 평범한 생활공간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사진은 불안이라는 게 특정한 지역과 상황이 아닌 평화로운 일상생활 속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집에서 식탁이나 테이블 위에 놓인 물컵을 누구나 한 번쯤 넘어뜨리거나 바닥에 떨어뜨린 적이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의도가 관람자에게 읽히는 지점이 바로 거기다. 그래서 사진을 보면 ‘아!’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것은 사진의 화면과 나의 일상생활 공간에서 벌어졌던 화면이 오버랩 되면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어쩌면 실소에 가까운 탄성이다.

 



멈출 수 없는 강박의 즐거움


작가가 불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시작한건 2008년이다. Restless Heart Syndrome(불안 강박증)이라는 큰 맥락의 작업을 쌓아가기 시작한 건 이듬해 2009년부터다. 그때부터 줄곧 이어지고 있다.


“현재 진행형인 작업은 계속해서 확장 중입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의 작업을 ‘최초의 시작’이라고 규정하고, 그다음은 콜론(:), 깨진 파편의 정돈된 상태를 보여주는 게 최근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세 작업은 ‘불안 강박증’이라는 하나의 큰 흐름으로 만납니다.”


작가가 불안이라는 요소를 담기 시작한 최초의 기록은 바니타스 정물에 기초한다. ‘인생무상’, ‘삶의 허무’를 해골, 뼈, 쓰러진 잔, 연기 등으로 일시적이고 부질없음을 상징으로 나타낸 바니타스의 허무주의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래서 초기 작품은 구성과 빛, 콘트라스, 회화적인 고전미술의 느낌이 강하다. 그 다음 위태로운 사물의 모습을 담은 작업이 콜론이다. 콜론은 부제나 추가 설명을 붙일 때 사용하는 문장부호다. 초창기 작업이 불안이라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넓은 시각을 선택했다면, 두 번째 작업은 불안이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 집중했다. 여기서 상황이라는 건 ‘진행되어 가는’ 시점이다.

 

 

불안이라는 것은 시작과 끝이 아닌 무언가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그러한 불안이 지속되는 시점인 떨어지려고 하는 찰나의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20시간 걸려 유리 파편을 설치한 세 번째 작업은 콜론을 작업하면서 깨진 유리 파편을 보고 내면에서의 또 다른 ‘불안’이라는 지점을 발견하면서 시작했다. 작가는 “유리 파편이 정지된 상태로 또 다른 의미의 안정된 상태로 볼 수 있지만, 정리라는 관점에서 강박감이 작동해 미세한 ‘못마땅함’을 파고들어 정리하는 설치작업이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의 멈추지 않는 작업은 결국 불안을 기초로 한 강박에 있다. 불안이나 강박은 스트레스의 주요 요소이긴 하지만, 그는 오랜 시간 작업을 이어오면서도 지루함이나 스트레스가 없다. 불안과 강박은 그의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하는 구심점이 되어 새로운 작업을 찾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리고 작업이 멈추지 않는 창조성은 작업에 관한 끊임없는 고뇌와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가 중형필름카메라를 고집하는 이유도 천천히 촬영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생각에 잠기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면 어떤 지점에서 새로운 불안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끝없는 여정의 동반자, 불안!


가족과 자신의 내면에서 시작한 불안이라는 작업이 어느덧 10년을 바라본다. 간혹 ‘유리 파편으로 작업한 것을 두고 마무리된 것 아니냐’고 작가에게 묻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작업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파편을 이용한 작업도 불안이라는 큰 흐름에서 뻗은 하나의 가지일 뿐이고, 그 역시 끝나지 않았다. 내년엔 비디오를 통해 다른 시각으로 보여줄 계획 중이다. 그도 끝날 거 같은 작업에서 또다시 새로운 것이 보이고,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것에 대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어쩌면 평생 갈지도 모른다”는 여지를 뒀다.

 

 

 앞으로 어떤 형태로 작업을 선보일지 예측할 수 없다는 작가는 2015년부터 ‘탑’을 소재로 시작한 작업도 큰 맥락에서 Restless Heart Syndrome흐름과 일치한다고 한다. 어떠한 경로(정상 또는 비정상적인 과정)를 통해 박물관 등에 보관된 탑을 보며 어색하게 부유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탑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야 한다는 강박을 낳고 또 다른 불안으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직접 탑을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2m 정도의 크기로 제작한 탑은 원래 있던 장소에 놓고 촬영한다. 그리고 박물관이라는 공간에서 유물이라는 한정되고 고정된 시각이 아닌 원래 있던 곳에서의 다양한 모습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사진가 신기철
사진가 신기철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를 거쳐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가 과정에 있는 작가는 최근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기획한 ‘누군가의 오브제’로 자신의 작품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각인했다. 평생 화두인 ‘Restless Heart Syndrome’으로 끝없이 새로운 작품을 선보여 신기철만의 사진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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