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공간 런던 ‘Marie's Wardrobe’ : 합판이 더해진 재생

Architecture / 배우리 기자 / 2018-03-07 09:56:50
  • -
  • +
  • 인쇄
합판도 등장한 지 어느덧 백 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열렬한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나무의 한계에 나름대로 저항해왔고, 아직도 나무계에서는 새로운 매체다. 합판의 활용법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할 것이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한 일본 건축가 츠루타 타로는 재생건축 프로젝트를 통해 그 무궁무진함의 한 갈래를 보여준다.
사진 Tim Crocker

 

 

건축가는 7개의 방이 있던 20세기의 좁고 높은 집을 거실과 부엌, 2개의 욕실과 4개의 침대 방, 지하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집으로 재구성해야 했다. 새로운 레이아웃을 위해 오픈플랜을 활용하는 한 편 위층과 아래층을 연결하는 육중한 계단에 대한 대대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합판으로 잇고 분리하기


 

 눈치 없이 공간만 차지하는 예전 계단을 대체할 재료로 선정된 것은 합판이다. 합판은 그대로 ‘판’인 채로 계단이 된 것이 아니라 각재로 다시 쪼개져서 가벼운 느낌마저 난다. 3D모델 작업을 통해 필요한 모양과 개수를 파악하고 2D로 다시 모델링해서 양 2,000개의 조각이 CNC로 절단되어 현장에 보내졌다. 그 중 1,872 조각이 계단을 위한 것이었다. 14 페이지의 설명서를 가지고 목수는 번호가 매겨진 퍼즐 조각을 2주에 걸쳐 현장에서 맞추었다. ‘ㄱ’자 모양의 부분을 붙이고 못질을 해서 계단의 디딤판과 수직면을 만든 다음 커다란 판으로 재단된 난간과 결합한다. 새로 만들어진 계단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 빛과 공기를 투과하고 통풍을 도와 좁게 이어진 위아래 공간이 하나로 이어진다.


합판은 계단처럼 공간을 이을 때도 사용되었지만 공간을 분할할 때도 사용되었다. 또 다른 합판 300 조각은, 오래된 창틀과 만나 계단과 계단을 오르내릴 때 만나는 두 개의 욕실, 다용도실을 분리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집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창틀을 재사용함으로써 건축가는 단지 오래된 것의 보존이라는 의미를 넘어 과거의 시제를 새로운 형태로 유지하고 새로운 삶을 제공하려고 했다고 설명한다. 한 편 벽은 반투명 유리로 막아져서 욕실 너머로 들어오는 빛이 차단되지 않고 낮 동안 계속 흘러들어오게 된다. 위 아래로 확장되는 이로써 집은 동서남북으로 모두 열린다.

 

 

 계단과 반투명 벽을 위해 쓰인 합판 조각 중 일부에는 건축가가 의뢰인과 교환한 이메일의 텍스트가 새겨져 있다. 현재의 텍스트는 새 계단이 또 언젠가 세월을 입었을 때 과거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또한 건축이라 하더라도 삼차원을 볼륨에 납작하게 지져진 글을 눈으로 좇아가면 보이는 여러 구멍을 통해 마음속에서 공명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건축가는 전한다.


합판으로 가구 짜기


 

합판은 가구도 되었다. 붙박이장은 물론이고 욕실 세면대 밑에서 장이 되기도 하고, 거실 공간에서 벽돌벽에 달린 책장이 되기도 하고 작은 캐비닛이 되기도 했다. 창문에서는 루버로 변신해서 햇빛을 막아주기도 한다. 원목이었다면 햇빛의 노출이 불가능했겠지만, 변형이 적은 합판이니 원하는 곳은 어디든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부엌의 찬장과 싱크대에는 리놀륨 코팅이 된 하얀 합판을 사용해서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식탁과 의자도 합판 절단면의 무늬를 그대로 드러내 맞춘 것들이다. 아무리 합판을 집안에 가득 붙여놓아도 테이블은 원목을 들여놓기 마련인데, 그만의 독특한 테이블은 모던하면서도 원목 못지않은 고급스러운 마감으로 그간 정체되어 있던 합판 가능성의 임계점을 훌쩍 넘는다.


집 안이 온통 합판으로만 만들어졌다면 심심한 구석이 있었겠지만, 오래된 벽돌과 빈티지 가구가 곳곳에서 합판의 밋밋함을 잡아주고, 흰 타일들은 합판을 더 깔끔하게 보이도록 도와주고 있다. 모든 것이 합판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집 꼭대기의 안방은 새로 지어진 공간으로 합판 가구 두 점과 몇몇 소품만 간단하게 들어가 있다. 이 방의 의 옷장이 프로젝트와 동명인 ‘마리의 옷장’이다. 지그재그 침대 다리와 경사진 천장 아래 낮게 들어간 옷장도 모두 합판이다. 다른 것이 거의 없이 낡은 것처럼 칠해진 벽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일본의 미니멀리즘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는 그런 방이 완성되었다.


합판은 나무를 경제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고 그 미적 가치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친환경 본드로 합판의 유해 논란도 잠잠해진 지금 합판을 아름답게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반갑다. ‘마리의 옷장’은 건물 자체의 지속가능성과 함께 나무의 지속가능성, 그리고 합판의 지속가능성도 함께 고민을 한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겠다.

 



츠루타 아키텍츠 | 일본인 츠루타는 런던에서 디자인 프로젝트를 시작해 현재는 츠루타 아키텍츠를 이끌며 주택 확장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고 있다. 주택 재개발에서 보인 창의력과 미감을 인정받아 런던에서 가장 주목하는 건축가 중 한 명으로 지난해에는 런던 남부의 주택 프로젝트 ‘House of Trace’로 영국왕립건축가협회에서 스티븐 로렌스 상을 수상하고 올해는 ‘마리의 옷장’으로 우승을 했다. 

 

[저작권자ⓒ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WOODPLANET Newsletter

우드플래닛 최신기사, 관련정보 등을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동의 하시겠습니까?

우드플래닛은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령에 의거하여,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함에 있어 정보주체로부터의 이용 동의 여부를 사전에 고지하고 있습니다. 정보주체가 되는 이용자께서는 아래 내용을 확인하시고,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ㆍ수집 이용 목적 : 우드플래닛과 구독자를 위한 의사소통 경로 확보

ㆍ수집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 이메일

ㆍ보유 및 이용 기간 : 메일링서비스 해지시 까지(해지시 정보파기)

뉴스레터에 등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