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작가 이정인 : 살리는 나무

Art / 배우리 기자 / 2018-04-02 0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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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만지는 이정인 작가와 그림 그리는 이재은 작가는 삼 년 전 만났던 화천을 떠나 강을 따라 가평으로 내려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니 그들을 한 번 더 만나도 되겠다 싶었다. 그 사이 시골살이의 이유였던 이정인 작가의 건강이 좋아지고, 이재은 작가의 그림이 더 화사해지게 된 비결도 물을 겸.

 

가평 복장리는 홍천과 화천에 이어 부부가 선택한 세 번째 외지다. 지난 7년간 정성스럽게 가꾼 폐교를 떠나기가 섭섭하긴 했지만 군의 문화정책도 바뀌고 마침 자리를 선뜻 내준 후원인이 있어 부부는 개척자 기질을 다시 발휘해보기로 한 것이다.


사는 공간은 숲 속 폐교에서 하얀 저택으로 바뀌었지만 그 안의 부부와 작품은 그대로였다. 아직 목공작업실은 오지 못했지만 벽에 칠도 모두 새로 하고 작품 진열도 얼추 마쳤다. 화천에서도 그렇고, 쇼룸에 있는 작품 뿐 아니라 부부가 쓰고 있는 가구들도 거의 남편 이정인 작가의 작품이다. 폐교의 마루바닥은 이사와서 싱크대가 되었고, 작업대로 쓰던 윤이 반들반들한 들매나무 테이블은 북한강을 바라보는 다이닝 테이블이 되었다. 스피커 목木소리도 작업실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 폐교가 그들에 의해 살아났던 것처럼 1년 넘도록 비어있던 그 건물도 활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생명으로 돌아오다



목공은 이제껏 한 일 중에 이정인 작가가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재은 작가 말로는 자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먹는 시간 빼고는 오로지 목공실에만 있었다고 한다. 일러스트 작업을 했던 남편이 행복한 표정으로 집중하는 것을 본 건 결혼 이래로 처음이었다. 그림이냐 목공이냐의 기로에서 목공의 길로 적극 밀어준 건 그걸 잘 아는 부인이었다.


작가가 처음 나무를 접했을 때부터 나무는 단순한 재료 이상이었다. 나무가 일생동안 보고 들은 것, 겪은 것들이 에너지로 남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대패질로 나무를 깎을 때면 이상하게 제 살을 깎는 것 같은 고통이 따랐다. 실제로 내 몸이 스스로를 갉아먹는 병을 가지게 된 이후로 얻게 된 능력인지도 모른다. 예민한 신경을 가지고 가구를 만들어 나가던 어느 날 가구가 되지 못해 마음 아파했던 나무 조각들에도 생명을 주기로 했다. 소일처럼 폐목에 그리던 물고기는 그렇게 자투리로 옮겨졌다.

 


아무리 자투리라고 하더라도 어마어마했을 나무의 에너지는 물고기에 모두 담겼다. (그래봤자 작가는 무궁무진한 나무의 이야기를 잠시 빌리는 것뿐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하나하나의 작은 에너지에서 큰 힘을 끌어내기 위해 이정인 작가는 그것들을 ‘무리’로 만든다. “보잘 것 없는 수천마리가 떼로 모이면 굉장한 에너지가 모이는 거죠.” 그는 한창 절제된 원과 사각, 질서와 혼돈의 이미지로 에너지를 실험중이다. 에너지라고 하면 묵직한 것 같지만 그는 여전히 ‘웃魚’ 같은 유머러스한 제목으로 그 무거움을 유쾌함으로 분산시킨다.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제목을 붙이고는 세상의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할 수 있잖아요. 미련하다고 핀잔주는 것이 아니라 진짜 불가능하고 어리석은 게 뭔지 보는 거죠. 제가 수백 마리 열심히 구하잖아요.”

 


자기도 모르게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해왔지만, 생각해보면 귀결은 물과 생명이다. 나무의 아름다움의 원천은 나무를 살리는 물이 지나간 자리다. 생명의 물을 품은 나무는 죽을 뻔 했던 작가에게 자신의 몸을 내주고는 작가를 살렸다. 그렇게 살게 된 작가가 죽은 나무로 살려낸 것이 물속에 사는 생명체, 바로 물고기라는 점을 생각하면 물은 언제나 작가를 휘감아온 것이다. 유유히 흐르는 북한강 옆의 새로운 작업실도 새로운 생명을 살릴 ‘터’였다.


살리는데 배려가 기본

 


부부가 작업하는 데 있어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갖는 기본적인 태도는 모든 생명에 대한 연민이다. 죽음을 맞닥뜨렸던 경험은 어떤 것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정인 작가는 폐목만 살린 것이 아니다. 가구를 만들면서 어쩔 수 없이 나무를 베고 깎아야 했지만 제재된 나무의 생명 있던 시절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나무의 뿌리 방향이 꼭 아래로 가도록, 나무가 거꾸로 처박히지 않도록 했다. 말은 못하지만 살아있었던 나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래서 그가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뿌리공예다. 하늘을 향하는 뿌리가 과연 안녕할지 걱정이다. 이런 배려를 기본으로 정성을 들이니 작품이 나쁠 수가 없다. 우아하고 과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녹아 있는 가구는 그야말로 단단하게 잘 만들어졌다. 어느 이음새 하나 삐딱하게 눈에 거슬리는 곳이 없다. 어쩌면 작가의 경건한 마음을 먼저 봐서 콩깍지가 씌였는지도 모르지만.

 

 

 


아직 물고기를 만들 자투리도 많겠다, 가구는 조금씩만 만들려고 한다. 나무라는 질료는 창작욕을 불러일으키지만 한 편으로 아무리 죽은 나무라고 하더라도 미안함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아예 이 미안함, 고마움까지 얹어서 작업할 생각이다. 그것을 보는 사람도 작가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옹이를 어루만져 등을 켜는 책상으로 사람들과 이미 교감을 한 바 있는 작가는 그의 혼이 어디로 어떻게 향하는지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부부의 ‘살림’은 나무를 가구로 살리고, 물고기로 살리고, 식물을 세밀화로 살리는 그런 관념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남는 나무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이정인 작가는 물고기 작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광적이었던 낚시 취미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이재은 작가도 버려지는 마네킹이 안쓰러워 마네킹에 영원히 갈아입지 않아도 되는 옷을 입혀 작품으로 만들고 있다. 이 역시 어느 날 보았던 쓰레기 마네킹을 살리면서도 폐기물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하는 생태적인 고민이 투영된 것이다. 그들은 ‘함께’ 살고, 살리면서 삶과 작품이 하나가 되는 세계를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었다. 그들은 최소한 아는 것은 작업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지금은 한 건물의 2, 3층만 부부와 두 아들이 점유하고 있지만 다이닝룸으로 쓰였던 1층도 부부가 먹을거리를 나누는 곳으로 구상하고 있고 나머지 건물들에도 레스토랑과 게스트하우스를 비롯한 문화 공간이 들어올 예정이다. 올 해 말 쯤 정리가 다 되면 복합적인 문화와 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후원인은 사람들이 제법 몰려들면 그 주변까지 영역을 넓힐 계획이라고 한다. 북한강가 3000평 안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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