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공예트렌드페어 주제관 : 어둠이 낳은 불편한 공예

칼럼 / 편집부 / 2019-12-20 03:4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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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본질은 공간이 아닌 작품
공예는 밝은 일상의 사물
뜨거운 호응은 평가 받아 마땅

 

 

어둠은, 빛의 부재 상태로 그림자와는 구별되며 예견할 수 없는 앞의 일과 예측할 수 없는 상태를 비유하는 경우임을 사전은 설명한다.

또한 어둠은 다시 일어서기 위한 사위의 변화로 빛의 반사율은 거의 제로에 이른다. 이때 모든 사물은 외곽선만 가까스로 남기고 본형은 어둠으로 숨어든다. 동공을 확장해 들여다본들 그 사물의 디테일은 진흙에 숨어든 미꾸라지처럼 점점 더 깊이 자취를 감춘다. 결국 어둠은 존재하는 것들의 상황과 상태를 하나로 묶어 은폐 시키는 절대성도 지닌다.

생뚱맞게 어둠에 대한 견강부회적 주석을 첨가한 이유는 ‘2019공예트렌드페어’의 적지 않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번 행사에서 많은 방문객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준 주제관 'object, objects...' 전에 대한 남다른 시각을 전하기 위해서다.

주제관에 참가한 훌륭한 작가와 그 작품들을 돋보이게 한 공간 꾸밈은 충분히 인정하는 게 맞다. 적절한 공간 배치와 흐름, 도드라진 이미지 연출과 작품에 대한 집중성 유도는 탐방객들의 호기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어두운 터널과 같은 광량의 부족과 그에 배치되는 스포트라이트는 공간적 호흡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공예의 측면에서는 가쁜 숨을 내쉬어야 했다.  


행사의 주인공은 공예, 공예품이다. 안타깝게도 최근의 공예 경향은 공예품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찾아보기 어렵다. 유명하다는 공예품의 대부분은 장식과 조형에 치우친 나머지 사용 불가하거나, 사용 의문성을 더한다. 

 

2019공예포럼의 첫 발표자인 가이 솔터(Guy Salter)가 주장하는 공예의 장르 해체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공예가 현대미술, 파인아트, 패션, 디자인 등등과 한 몸이 되는 순간 시장과 장르 지배성이 취약한 공예는 공간 인테리어 장식품으로 전락하기 십상이어서다.


 

 


이번 행사에서도 주제관의 전시 제목이 ‘오브젝트’인지는 몰라도 기물의 일상성보다 조형성과 예술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임이 분명했다. 참여한 작가들이 굳이 공예가 혹은 공예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더라도 공예적 프레임으로 찾은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예술성보다는 실용적 아름다움을 담은 공예를 보고싶어 했을 것이다. 그런 일반적 시각에서 벗어나길 요구하는 전시라면, 굳이 이 대형마켓과 같은 곳이 아니어도 감상할 수 있는 공예적 예술작품은 도처에 차고 넘친다. 


올해 4월, 일본 민예관의 5평 공간에서 만난 조선의 공예는 민낯에서도 그 아름다운 자태를 추호의 흔들림이 없이 나타냈다. 오랜 쓰임의 흔적들은 사용자의 습관과 정서까지 고스란히 담아, 그 앞에 선 방문객들의 호흡을 멎게 했다. 

 

공예는 쓰임의 궁극점에서 그 진가를 만날 수 있는 기물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애장품이 될 수 있다. 공예가 우리의 일상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생활품임이 먼저 전제되지 않는다면, 다른 장르의 호화로운 이름으로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하지만 예술 아래에 있을 수도, 그 위에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이 공예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주제관에 참여한 신명덕 작가의 전시를 10년 이상 평범한 빛에서도 온전히 잘 읽을 수 있었는데, 오히려 이번에는 주제관의 어둠과 강한 인공조명에 매달린 탓인지는 몰라도 작가의 의도가 과도한 포장으로 왜곡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또 주제관의 특별함은 그 외의 전시공간에 대한 역차별일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검은 공간에서 뿜어지는 한 줄기의 인공조명은 태양보다 더 강렬하고 그 아래의 사물은 그 빛의 세기만큼 짙은 그림자에 의해 관객은 과장과 오해 그리고 일시적 감정이입에 빠질 수 있다. 더 큰 위험은 공간이 사물을 주관하는 주객전도 상황이다.

 

과한 공간 연출은 주체인 사물에 대한 착시현상을 가져다줄 수 있다. 공예는 그 차체가 발광되는 빛과 같은 존재로, 백일하에 적나라하게 펼쳐두고서도 돋보일 수 있어야 바른 공예임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어느 공예에디터의 지적처럼, 주제관 정도의 비중 있는 공간은 몇몇 기획자의 주관에 의지하기보다, 파리의 헤벨라시옹처럼 선정위원회가 그해에 던진 주제를 작가와 일반인이 공유하고 그것의 최종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방안에 동의한다.

한 해에 한 번뿐인 큰 공예 행사여서 공예가도, 공예를 꾸미는 연출가도 단기효과에 집착해야 하는 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쯤에서 견질하지 않는다면 자칫 공간인테리어, 설치미술, 퍼포먼스 등에 경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어설픈 지적질을 해보았다.

우리 예술의 정수인 조선백자와 생활정서와 함께 완성된 조선가구는 늘 밝은 일상에서 드러나는 기물이면서 사물이었다. 밝은 빛이 들추는 불완전성 때문에 공예가는 노심초사 만지고 갈고 닦음을 수없이 반복한다. 

 

2019 공예트렌드페어 주제관이 충분한 호응을 받은 만큼, 그곳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공예의 본질이 호도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어둠은 태양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어둠은 내일을 위한 에너지임과 동시에 본질을 감추거나, 부조리를 덮어버리는 집행관이면서 공백의 연출가이기 때문이다.


공예는 분명히 자기 위치값을 가지고 있다. 공예 행위, 공예품이 밝은 일상의 한가운데서 장식을 위한 오브제가 아닌 또 예술의 값을 공유하는 사물이기 전에 삶과 공존하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 기물이다. 

 

밝은 공간에서 공예 그 자체로 실용과 아름다움의 가치를 예측 가능하게 해주는, 일 년 뒤 ‘2020 공예트렌드페어’를 기다려 본다.

 

글 육상수(우드플래닛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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