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민병헌이 사는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방

Interior / 배우리 기자 / 2018-03-21 02: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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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도 만년설일 것만 같은 오래된 도시, 군산. 하얗게 칠했지만 세월까지는 미처 덮을 수 없었던 높은 대문, 그리고 뻥 뚫려버린 명패의 자리. 새로 주인 된 자는 우울을 꽤 고상한 취미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지 않을까.

 

대문을 지나 마당 안으로 들어가면 묘한 집이 나온다. 백 년이 다 된 서양식 일본주택, 양관. 이 집은 사진가 민병헌의 집이다. 그의 집 안은 시간이 흐르면서도 멈춰있다. 시간이 혼재된 곳에서 작가는 자신의 아날로그적 정수를 더 닦아가는 듯 했다.


■  100년이 쌓인 집


정문의 파사드가 왠지 건물의 측면 같은 어색함은 있지만 비틀린 시공간의 분위기 자체가 사진가를 이 집으로 끌어들인 것 같았다. 1920년의 원형을 유지하는 하얀 벽과 현관 옆으로는 70년대 빨간 벽돌벽이 이어져 있다. 민병헌은 바로 이 지점이 마음에 들었다. 다다미방에 나무 필름을 붙인 벽장이 있는가 하면 남아 있는 문들은 거의 60년대 이후의 것들이다. 백 년 전부터 해방 후 이천 년대까지 시간이 켜켜이 쌓여 ‘꿀꿀’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 게 좋았다.

 

당최 무엇에 홀렸는지 17년간 살았던 양평 문호리를 등지고 군산시대를 열었다.(훗날 작가의 작품은 그렇게 분류될 수 있으리라.) 2014년 작가가 복잡한 사연을 가지고 십여 년 간 비어 관리가 안 된 집을 사고보니 천장은 여기저기 하늘이 올려다 보이고 여기 저기 썩고 쥐가 들끓고 있었다. 그는 동네 나이 든 목수와 단둘이 하나씩 고치기 시작했다. 집안을 채웠던 쓰레기를 두 트럭 실어 내보내고, 천장을 메우고, 벽을 칠하고, 바닥을 깔고, 쩌든 때로 형체도 볼 수 없던 조명들을 살렸다. 누구도 들어오길 꺼려하던 폐허가 그렇게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유물이 되었다.

 

 

주인의 취향 기준에 들지 않아 버려질 뻔한 십장생 알루미늄 문을 들어가면 이때부터는 정말 시간 여행이다. 응접실의 미드센츄리 덴마크 가구들과 영국에서 온 조명은 원래 이 집에 있었던 것처럼 오래된 시간 안에 스며들어 있다. 그가 음악을 듣고 주로 쉬는 거실 공간은 노래를 위한 빈티지 오디오가 자리하고, 티크 테이블과 영국산 카드 테이블 겸 콘솔, 의자가 있다. 가지고 있는 가구들이 이 집에 들어오면 좋을것 같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한 적도 없지만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알아서 서로의 시간을 알아보고 자기들끼리 융화된다. 뭐든지 주인 기분 내키는 대로지만 다 자동으로 맞게 돼 있다는 것이다.


그의 집에는 잘난 빈티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다미방에 60년 된 MDF 벽장이 있는 것처럼 그가 가져온 LP장도, 부엌의 수납장도 현대의 가짜 나무다. 거실 한 쪽에 있는 등은 이케아의 플라스틱 제품인데 슬쩍 빈티지 흉내를 내고 있다. 별채 점방에서 가져온 60년대 책상과 의자도 있다. 작가의 말마따나“웃기는”광경이다. 이 웃기는 광경이 멋있어 보이는 것은 어느 하나 주인의 손이 닿지 않거나 애정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주인의 감성이 있기 때문에 이 집에서는 이케아도 MDF도‘진짜’빈티지의 자격이 주어진다. 

 

 

영감이 가득한 방


본채를 고치면서 처음 기거했던 별채에 다락을 올라가는 까만 계단과 창문은 백 년 전 그대로다. 계단은 돌보다 더 단단하고 창문은 아직도 잘 열리고 닫힌다. 하지만 새 주인이 닦아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지켜온 민병헌이기 때문에 이 집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버려진 것들을 다시 살려내긴 했지만 이제는 그것들이 ‘죽임(그것들은 말 그대로 죽이니까)’으로 주인을 살려내고 있다. 부엌에는 무지개떡색의 타일이 촘촘히 박혀있고, 그가 기거하는 2층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 문에는 어느 중세 성당에서 시작해서 이 동방까지 왔을 법한 빛과 꽃의 나무창살이 있다.


집안의 모든 사물들은 언제나 그와 마주치길 기다리고 있으며 민병헌은 언제나 그 사물들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사랑의 눈빛으로 대해준다. 작가는 집 소개를 하면서 연신 죽고 미치는 경지에 대해 설파했다. 기거하는 방에도 장식적이면서도 매우 절제된 동그란 플라스틱 조명이 달려 있다. 방의 불을 켜면 지익 소리를 내면서 점멸한 후 밝게 켜진다. 어두움에서 서서히 밝음을 좇아가는 그 짧은 시간은 암실의 노광시간처럼 느껴졌다. 집안 곳곳은 쓸쓸함을 축적하는 또 다른 암실인 셈. 낮에 들어가서 깜깜한 밤이 되어야 그 집을 나올 수 있었는데 작가는 한 오래된 조명을 보며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겼다. “이런 걸 보면 내 사진은 수준이 낮지. 이 정도밖에 못 하나….”


그 곳에서 그는 빈티지 오디오로 음악을 듣고, 오래된 잔에 커피를 마시고, 정원 가꾸기에 관한 책을 보면서 그렇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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