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퍼니처 작가 강우림, 가구에 낯선 감각을 조각하다

아트 / 육상수 칼럼니스트 / 2020-01-28 02: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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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의 유려한 흐름을 담은 아트퍼니처
예술과 실용성, 작가의 세계관
가구 정체성의 변주와 재해석

 

A.토인비는 18세기 중엽에 시작된 ‘산업혁명’은 격변적이고 격렬한 현상이기보다는 그 이전부터 시작하여 온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기술혁신의 과정으로 규정했다. 산업혁명을 개인 혹은 집단의 수제적 생산형태에 반하는 복제적 대량생산체계라는 제한적 이해로는 한 시대의 변화를 ‘혁명’이라는 단어로 규정할 수는 없다.

기능적 효율과 경제적 가치를 위한 기계 우위의 반복적 생산은 가격의 평균화와 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가져다주는 대신, 생산품은 점점 저급해졌고 사물의 희소성과 전통의 가치는 사라져갔다. 이에 대한 반발적 행태의 하나로 오늘날 모든 생산품의 기본 구조를 이루는 ‘디자인(design)’이라는 사유의 수단이 탄생했다. 


 


 

디자인은 현대산업의 생산체계에 근간을 이루면서 소유의 평균화와 삶의 평균점을 높이는 긍정적 역학을 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지배하는 생산성은 공산품과의 협업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사물의 고유성과 희소성을 감당하기에는 필요충분조건이 되지 못했고, 사물의 독자적 예술성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 이유로 사물에 기능적 예술성을 부여하기 위해 공예적 기반에 순수미술과 장식미술 등의 장치를 혼합한 새로운 장르가 바로 ‘아트퍼니처’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트퍼니처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여전히 불분명하고 생소하다. 하지만 공예적 목적에 작가적 시점이 접점을 이룬 아트퍼니처는 이해의 벽을 넘기 전에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곡선과 적층의 아트퍼니처

곡선의 유려한 흐름을 근본으로 가구의 용도와 형태에 작가의 세계관을 이입시킨 강우림 작가의 아트퍼니처 역시, 사물의 역사적 흐름 중어느 한 점에서 태생된 작품이다. 난초의 정형적 곡선과 가냘픈 여자 몸이 투사하는 비정형 곡선은 강우림 가구에서 합체를 이루고 그 위에 기능의 일부분 혹은 전체가 내려앉은 그의 작품은 분명 남다른 의도를 담고 있다.  


“아트퍼니처는 늘 새로움에 대한 도전입니다. 지속적인 시도가 필요한 장르에요. 선택한 재료를 사용해 기존에 없는 형태를 조각함으로써 사회나 대중에게 낯선 감각과 감성을 제시해 작가의 영향력을 전하는 것입니다.”(2015 우드플래닛 인터뷰 중에서 )

아트퍼니처는 예술과 실용성 즉 작가의 세계관과 이용자의 합리성이 변곡점에서 합치를 이루는 작업이다. 하지만 최근의 경향은 실용성보다 작가의 관점이 두드러지는 작품이 많이 선보이는 추세다. 강우림의 아트퍼니처 역시 작가의 내재적 사유에 의한 조형성이 중심이다. 그의 신작에서 나타나는 유기적 형상의 작품은 가구의 본질보다 곡선의 정점이 하나의 매스로 표현되는 조형성이 앞선다. 매스가 이루는 단순함은 정적 요소와 동적 요소를 동시에 담고 있다.


 

 

강우림은 쓰임의 정체성을 조형적 예술로 치환하는 특별한 감성의 소유자다. 지난 해 겨울, 전시장에서 만난 그의 작품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이 단정에 의문을 갖지 않으리라는 판단이다. 퍼니처의 완벽한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히 접근하지 못하고 가구 주위를 빙빙 돌아다니게 하는 배타적 근접성은 그의 아트퍼니처가 현재 어떤 상태로 우리들에게 와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전시는, 그가 5년 전에 얘기한 “누군가에게 내 작업의 정체성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해야죠. 그게 형태든 사상이든 당면한 과제는 이제 그 영역에 발을 들이는 것입니다.”를 성공적으로 반증해 주었다.

 

 

 

조형적 기법, 수제적 작업, 산업적 생산력, 작가의 문학성 등이 혼연일체를 이루는 장르가 아트퍼니처 외에 수용할 대안이 없다면, 아트퍼니처 작가 강우림에게 도전과 극복의 통증은 능히 수행해야 할 능동적 과제로 다가갈 것이다.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 대학원에서 블랙 시리즈와 란 시리즈의 실험적 과정을 거친 강우림은 미술과 공예, 디자인 3요소 충족이 전제되는 ‘아트퍼니처’의 질곡점을 벗어나고 있는 작가로 주목 받는다. 가구는 ‘완전한 기능’과 ‘사용의 시간성’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는 도구의 영역에 한정한 이야기다. 순수예술의 경계선이 일상의 도구에까지 미치는 만큼 가구 또한 기능과 정체성의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해야 할 때라면, 강우림의 가구가 그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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