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섭의 2017 가구전은 매우 의미 있었다. 10년 전, 그는 목재의 생태적 감각을 통해 가구의 볼륨감을 세상에 선 보이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다시 10년, 가구의 경계에서 벗어나 건축과 공간의 뼈대를 만들어 갔다.
건축은 1인의 상상력보다 거친 협업의 결과물이면서 공유의 장르다. 어쩌면 남의 손을 빌려서야 완성할 수 있는 건축에 흥미를 잃은 것일까, 그는 2년 전 다시 목수 이정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의 가구를 빚었다.
이정섭의 가구는 쓰임과 기능 따위의 편리함의 속세를 떠나, 먼 산을 조망하는 풍수지리가의 안목을 요구했다. 목재의 몸통을 겹겹이 묶어 큰 몸둥아리를 만든 뒤 비수로 목재의 피부살을 베어나갔다. 마치 방사능으로 사물의 연대기를 알아내듯, 예리한 칼끝은 나무의 나이를 캐물어 그 숫자만큼 결을 쳤다. 여러 몸이 섞여 있어 나잇값대로 그어진 선들은 시간의 퇴적을 형상화 했다.
이런 일련의 작업은 퇴적된 매스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놓여 있다. 오브제가 된 가구는 기본 기능을 상실한 채 바다를 유랑하는 큰 바위처럼 다가온다. 매스의 무게 중심은 중력으로 향한다. 아무리 높은 봉우리도 그 근원은 땅에 있듯이 가구의 중심이 아래를 향한다. 칼날에 몸을 맡긴 목재는 서로 살을 내주면서 퇴적으로 하나가 되고, 깊은 상처는 목리가 되어 다시 생명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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