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가의 안목으로 해석한 이정섭 가구

아트 / 육상수 칼럼니스트 / 2020-05-21 02: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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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섭의 2017 가구전은 매우 의미 있었다. 10년 전, 그는 목재의 생태적 감각을 통해 가구의 볼륨감을 세상에 선 보이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다시 10년, 가구의 경계에서 벗어나 건축과 공간의 뼈대를 만들어 갔다.

건축은 1인의 상상력보다 거친 협업의 결과물이면서 공유의 장르다. 어쩌면 남의 손을 빌려서야 완성할 수 있는 건축에 흥미를 잃은 것일까, 그는 2년 전 다시 목수 이정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의 가구를 빚었다.
 


 

이정섭의 가구는 쓰임과 기능 따위의 편리함의 속세를 떠나, 먼 산을 조망하는 풍수지리가의 안목을 요구했다. 목재의 몸통을 겹겹이 묶어 큰 몸둥아리를 만든 뒤 비수로 목재의 피부살을 베어나갔다. 마치 방사능으로 사물의 연대기를 알아내듯, 예리한 칼끝은 나무의 나이를 캐물어 그 숫자만큼 결을 쳤다. 여러 몸이 섞여 있어 나잇값대로 그어진 선들은 시간의 퇴적을 형상화 했다.

 

 

 

이런 일련의 작업은 퇴적된 매스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놓여 있다. 오브제가 된 가구는 기본 기능을 상실한 채 바다를 유랑하는 큰 바위처럼 다가온다. 매스의 무게 중심은 중력으로 향한다. 아무리 높은 봉우리도 그 근원은 땅에 있듯이 가구의 중심이 아래를 향한다. 칼날에 몸을 맡긴 목재는 서로 살을 내주면서 퇴적으로 하나가 되고, 깊은 상처는 목리가 되어 다시 생명을 찾는다.

 


어둠에 놓인 그의 가구는 자신을 선택해 줄 주인 대신, 스스로의 걸음으로 숲을 향한다. 오래 전에 떠나온 생명이 고향으로 회귀한다. 목재의 몸통이 탄소로 이뤄진 유기물임을 다시 기억시킨다. 우리 시대에 목수라는 이름으로, 물질의 본영에 중단 없이 질문하는 이정섭을 만난 사실만으로 전시의 의미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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