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서정화 '재료의 맛'

Furniture / 배우리 기자 / 2018-12-06 01: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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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두 소재가 함께 했을 때 감각들은 충돌하고 부딪친다. 하나에 먼저 닿기도 전에 두 물질은 눈을 공격하고 피부를 공격한다. 그리고 알싸한 냄새의 기억까지 떠오르게 한다. 서정화 디자이너가 발견한 것은 바로 그거다. 날 것과 정제된 것, 자연으로부터 온 1차 재료와 가공된 2차 재료가 만났을 때 묘하고 낯선 맛 말이다.

 

반찬그릇으로 만든 작은 놋그릇 위에 돌멩이 한 조각 얹어놓고 바라보았는데 그 느낌이 정말 예뻤다. 창가에 놓고 한참을 더 바라보다가 ‘유레카’ 했다. 유학하고 돌아와서 차린 작업실에서 서정화의 시그니처 작업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재료의 교차
밑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기둥에 다른 소재의 동그란 좌판을 얹은 스툴. ‘Material Container:소재의 구성’이라는 제목과 어울리게 이 작업에 쓰인 소재들은 매우 다양하다. 나무, 아크릴, 현무암, 황동, 알루미늄, 적동, 그리고 왕골까지 그의 설명에 따르면 20 종류 이상의 소재가 사용되고 30가지 이상의 조합이 이루어졌다. 처음 놋그릇 위 현무암을 본 후 그가 실험한 재료들이다.  

 


나무는 통으로 깎고, 알루미늄은 층층이 쌓은 주물에서 떠내고, 돌과 아크릴은 깎았다. 그렇게 다듬은 재료를 같은 동그란 형상 안에 집어넣고 그들이 내는 분위기를 살폈다. 반복되는 시각적 형상 안에서 변화하는 소재로 극대화되는 감각은 촉각이다. 작업할 때 꽤 도움을 받았다는, 어쩌면 외로운 작업에 위로까지 되었을 <건축과 감각>이라는 책과 공명하기도 한다. 이 작업의 시작이 그랬듯 디자이너는 평소에도 소재를 작업실로 주워와 적절한 형상이나 배열이 생각날 때까지 지긋이 바라보는 편이다.

 

 서정화 디자이너의 작업실

 

아무래도 보좌관 같은 소재 없이 혼자서 컴퓨터 화면이나 백지에 그림을 그려서는 느낌이 확 안 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실물을 보고 작업을 해서 그런지 그는 직접 작업하지는 않지만 기술자들을 찾고 물성에 맞는 적당한 프로세스를 찾는 과정도 즐기는 디자이너에 속한다. 확실히 그의 작업은 실물로 봤을 때만이 풍성한 느낌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사진은 아무래도 실물보다 밋밋하다.

 


작은 스툴 모양의 기둥은 기다란 벤치도 되고, 사이드 테이블도 되고, 그의 작업실에 있는 것처럼 책장도 변했다. 재료의 촉각성을 넘어 실생활에 사용되는 물리적인 성질을 적용해 테이블도 만들었다. 마음에 드는 물질은 웬만큼 쓴 것 같지만 아직 그의 ‘재료 용기’ 안에는 할 것들이 남았다.

경계를 흐리는 재주
그의 전공은 금속공예다. 힘들게 입시를 치르고 미대를 갔는데 공예랍시고 포크를 만들고 주얼리를 만들고 하는 것이 영 마뜩치 않긴 했다. 반지는 만들면 부서지는 것이 딱히 적성에 안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친구들이랑 동을 때려 주전자를 만들면서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고, 공예니 디자인이니 예술이니 침이 마르도록 설전을 벌이기도 하고, 해외 디자이너들을 동경 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마르틴 바스 같은 해외 디자이너들은 그저 무엇이든 만들고 있었으며, 그것들은 말없이 경계들을 허물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드록 디자인의 수장 하이스 바커가 주얼리 디자이너로 평범한 커틀러리 같은 것을 만들다가 점차 패션과 구조적인 가구, 공간 등으로 영역을 넓혀 ‘합한’ 예술가가 된 것을 보고 ‘저 사람한테 배워봐야겠다’ 싶었다. 졸업을 하고 하이스 바커가 학장으로 있던 학교로 가서 컨텍스추얼 디자인을 전공했다.

 


스툴도 그렇지만 테이블, 거울 등 구조적이고 조형적이면서도 쓰임을 벗어나지 않는 건 기능을 위한 최소한의 제약을 안고 디자인하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공예트렌드페어에 불리곤 하는 것도 쓰임을 간직한채 공예 기법을 적용했기 때문인데 그는 어느 곳에서 어떻게 가공하는 게 좋을지 조율하고 협업하고 마무리만 작업실 한켠에서 할 뿐이다. 작품에서 물질은 가져가되 형태만 변형해서 오브제로 제작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기도 하지만 그건 가끔일 뿐 처음부터 조각을 의도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경계를 넘나들면서 컵받침도 만들고 커다란 테이블도 만든다. 다만 그의 작품은 소재가 자신의 역사와 물질성을 드러내기 때문에기능이 있는 물건이라고 해서 그 기능에 조여져 단순해지지 않는다. 그게 다다.

 


디자이너의 스타일
그의 시도는 교차되는 재료의 낯섦에서 비롯했지만 이제 하나의 ‘스타일’을 이룬 것 같다. 물론 제주 열풍으로 현무암 조각들이 뭍으로 많이 올라오긴 했지만 한 카페는 서정화 작가의 공간 작업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재료와 스타일이 녹아있다. 타원의 현무암을 두른 황동이 그렇고 나무가 그렇다. 작가가 직접 작업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한 디자이너가 우리의 주변 환경을 고양하는데 일조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낙관적이다.

 

서정화 디자이너


아무튼 디자이너는 조금씩 공간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복합쇼핑몰의 커다란 벤치와 플랜터라든지 이번에 맡은 화장품 브랜드 런칭 팝업스토어 디스플레이 작업도 그렇다. 작업실에는 화장품을 받쳐줄 나무들과 뽀얀 대리석들이 가볍게 쌓여 있다. 그러고 보면 모두 누군가의 살색과 가까운 누드 톤이다. 자연에 가깝고 내 살에 가까운 화장품은 나무 위에서 돋보일 예정이다. 디자이너는 아크릴도 쓰고 에폭시도 쓰지만 이런 작업 의뢰가 들어오는 것은 아무래도 그가 자연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작업실의 파일럿 샘플

서정화 작가의 작업실에서 눈길을 끄는 건 그의 작품만이 아니다. 그의 책상 앞에는 유학 시절 사온, 팔걸이가 한 번 꼬아진 나무 프레임의 초록색 가죽 의자가 있다. 때가 꼬질꼬질한 반백 살의 의자 두 개를 만원 주고 사서 자전거에 싣고 집에 가져와 쓰다가 분해해서 한국에까지 데려와 지금까지 내리 쓰고 있는 중이다. 2차대전을 중계했을 법한 커다란 나무 프레임의 필립스 라디오는 아직도 팔팔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래된 물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이가 오래 갈 물건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건 순진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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