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을 위해 조각을 버렸다. 목수 이세일

Life / 백홍기 기자 / 2018-04-02 01:3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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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조각가의 삶이 전부인 줄 알았던 이세일 목수는 지금 수저와 스툴을 깎으며 산다. 그에게 중요한 건 무엇을 깎느냐가 아닌, 손에 칼을 쥐고 나무 깎는 삶을 살고 있다는 현실이다.

 

스물한 살에 시작한 조각 인생이 벌써 스물다섯 해를 훌쩍 넘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사찰을 거치며 불교조각으로 솜씨를 닦은 그는 한 눈 팔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불교조각을 손에서 내려놨다. “철창에 갇혀 사는 동물이 행복을 알겠어요? 사람도 같다고 생각해요. 살면서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하면 그건 우리에 갇혀 지내는 동물과 다름없죠.” 그는 조각에 싫증을 느낀 게 아니라 남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는 삶이 그를 시골로 이끌었다.


그의 첫 독립지는 청양이었다. 지인의 공방 옆에 자리를 마련하고 자기만의 불교 작품을 제작해 차곡차곡 창고에 쌓았다. 그런데 1년간 제법 많이 모은 작품이 어느 날 한 줌의 재로 사라졌다. “그땐 힘들었죠. 지금 생각하면 불교조각은 그만두라는 계시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그 해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묘를 쓰러 고향에 갔을 때 귀향을 결심했죠.” 고향이라지만, 가족과 친척도 없고 어려서 떠나온 곳이라 타향이나 마찬가지였다. 집 앞 도로를 오가는 사람들과 관공서에서 이세일 목수의 작품을 보고 의뢰하는 일도 잦아졌다. 그의 작업도 불교조각부터 장승, 정자까지 점점 폭이 넓어졌다. 그는 조금씩 고향에 뿌리를 내렸다.

 

결혼 전의 아내는 이세일 목수보다 몇 해 빨리 귀향해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부모님 댁 마당에 혼자 생활할 공간을 계획했다. 손수 집 지으며 필요한 건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목수가 필요해 산 너머 솜씨 좋다는 사람을 소개받았다. 남편이 될 이세일 목수였다. 어쩌면, 시공사를 통해 2~3개월 만에 집을 뚝딱 지었다면, 둘은 그저 좋은 이웃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함께 집 지은 1년은 그들이 서로 알아가는 데 부족하지 않았다. 집을 완공 한 뒤, 마당에 혼례상을 차리고 지인들을 초청해 조촐한 혼례를 마쳤다. 그렇게 건축주와 현장 목수가 만나 결혼했다. 혼자 거주하기 위해 계획한 8평의 작은 집에 이젠 세 식구가 산다.


그의 작품엔 35㎜의 구멍이 뚫려있다. “구멍은 손잡이로 사용하면서 안과 밖을 연결하는 소통의 의미도 있지만 제 나이를 또 다른 의미이기도 하죠.” 서른다섯. 그가 도심을 등지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한 나이다. 그의 인생을 둘로 나누면 서른다섯 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가 35라는 숫자에 큰 의미를 둔 건 그만큼 현재가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의미다. 새로운 꿈과 뛰어난 감각을 지닌 아내라는 조언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진 집과 공방을 오가면서 작품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아내와 끊임없이 의논하고 살펴본 뒤 개선한다. 완성작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것도 아내다. “아내와 평소엔 싸우지 않지만, 작품 가지고 의논할 땐 자주 다퉈요. 그런데도 늘 작품을 만들면 아내한테 보여줘요. 제 눈에 보이지 않는 걸 아내가 찾아주기 때문이죠.”

 

이세일 목수의 작품은 기존 것의 해체와 뒤집어보기에서 시작한다. 그러한 생각은 작업복 안의 내의를 뒤집어 입는 행위로 이어진다. 파문스툴도 그만의 시선이 있었기에 완성된 작품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의자들이 너무 튼튼하지 않아요? 어떤 의자는 열 사람이 올라가도 끄떡없을 정도죠. 한 사람이 앉을 정도면 충분한데도요.” 가늘고 긴 다리가 구부정하기까지 한 파문스툴을 보면 ‘과연 앉아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부질없는 걱정이다. 한 사람만을 위한 적절한 견고함을 갖추기 위해 수없이 반복된 과정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고향에 내려와 누구보다 든든한 동반자와의 만남으로 그는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데 큰 용기와 힘을 얻었다. “아내와 의논해 산 너머에 있던 공방을 집 근처마을 입구로 옮겼어요. 그나마 큰길 도로 옆에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이 종종 들렀는데, 마을 안으로 들어온다는 건 할 일이 없어진다는 것과 같았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고픈 목수로 살았어요. 그래도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큰 결심을 했죠. ”공방을 옮기면서 부족한 돈을 메우기 위해 리모델링하는 학교에서 부재를 얻고 필요한 인력은 스스로 해결했다. 세 번째 공방을 완공해서야 컨테이너 작업실에서 벗어났다.


틈틈이 재미 삼아 깎던 숟가락은 작품 활동으로 이어졌다. 좋은 숟가락을 얻기 위해 인근 산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나무를 찾아 목질을 살피고 연구했다. 가장 즐겨 사용하는 나무는 부드러우면서 단단한 사스레피 나무다. ‘질 좋은 수입목을 사용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 나무의 목질이 뛰어나고 우리 정서엔 우리의 나무가 좋음을 강조한다. ‘숟가락 숲’이라는 작품도 나무의 종과 목질을 알아내기 위해 작업한 결과물이다. 그렇게 자연에 대한 관심과 나무 깎는 그의 삶은 그린우드워킹으로 이어졌다. 첫해는 집 뒤 숲속에서 숟가락을 깎고 다음해는 감나무밭을 정리한 숲에서 스툴을 만들었다. 숲속에서 수공구만 사용해 무언가 만드는 건 인간의 원초적인 행위에 가깝고 자연의 건강함을 제공했다. 도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겐 신선한 경험일 수밖에 없다. 그린우드워킹 프로그램으로 바라던 삶을 얻은 그는 참여자들의 뜨거운 호응이 더해져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며 바라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세일 목수는 지인이 선물한 커피 분쇄기를 자신의 스타일로 새로 만들면서 또 하나의 꿈을 가졌다. 수제 커피 분쇄기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그 전에 커피 분쇄기 100개를 만들어 전시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잡고 있다. 아직은 해결해야 할 것과 채워야 할 게 많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2017년을 어느 때보다 바쁜 해로 보낸 이세일 목수. 올해도 새로운 계획으로 가득 차 있다. 그에게는 가족이라는 든든한 거목이 있기에 좀 더 욕심을 내어도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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