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목수 함혜주, 가구를 조각하다

공예 / 편집부 / 2020-02-10 01:2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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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여자목수>
이리히아트퍼니처 목공방의 창업과 일상
젊은 시절의 초상
자연에 기댄 새로운 삶 개척
이리히 아트퍼니처 스튜디오(대전 서구 갈마동) 2018년 3월 오픈 / 인스타그램 @irihi.studio

 

어릴 적부터 함혜주는 생각이 많았다. 원하는 미술대학에 들어가도 학점을 위한 수업에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그는 하이데거나 칸트 같은 철학책을 읽으며 삶의 본질이나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내면에 자리 잡은 샴쌍둥이 같은 자아가 두 개로 갈라졌다가 충돌하는 듯했다. 

 

20대에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 같은 방황에 하루하루 고민이 깊어 갔다. 깜깜한 터널에서 빛줄기를 찼던 중 휴학을 하고 일본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일을 하며 그동안 배우고 싶던 유리공예도 접했고,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일본을 누비며 고민의 시간을 충분히 보냈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힘들고 괴로운 시기였지만 꼭 한 번 겪어야 할 통과의례와도 같았다. 그렇게 때늦은 성장통을 겪은 함혜주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의 치기어린 고민들을 꺼내 작품으로 만든다. 한때의 방황이 지금의 자양분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함혜주가 목공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조금 남달랐다. 딱히 나무라는 소재에 꽂혀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조형적 작업을 위한 도구이자 수단으로서 목공을 선택한 것이다. 함혜주는 직접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을 수 있는 결과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그 방식과 방법을 몰랐다.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로 작업물을 만드는 일도 의미 있지만, 항상 어딘가 가득 차오르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그동안 꾹꾹 누르고 있던 욕망을 해소할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단지 첫 도구가 나무였을 뿐.


함혜주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것은 아트퍼니처다. 그가 생각하는 아트퍼니처는 “디자인과 기능 중심인 생활 가구와 다르게 기능을 조금 덜어내고 조형성을 극대화하거나 메시지를 담은” 가구다. 말끔히 정리된 작업실 한 편에 놓여있는 함혜주의 가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안드라망 조명

 

나무 조각을 움직여 빛의 방향과 조도를 조절할 수 있는 ‘의식의 램프’는 어떤 특정한 날의 기분에 따라 빛으로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게 만든 조명등이다. 크고 작은 거울들의 조합인 ‘안드라망’은 인간은 결국 모두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비추며 세상을 이루고 있다는 불교 용어를 반영한 작품이다. 작가에게 내적 고뇌와 갈등은 필수 조건이라 했던가. 자신과 세상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20대에 쓴 일기 속에서 이 작품들이 태어났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던 가구들이 그의 분신같이 다가왔다. 함혜주에게 아트퍼니처는 결국 ‘사유할 수 있는 가구’이자 ‘해소의 영역’이다. 작가가 담고 싶은 메시지가 잘 구현되고 전달되는 것이 그에게는 아트퍼니처의 본질인 셈이다.

 

인터뷰를 하던 날, 함혜주의 손가락에는 상처가 있었다. 공방 오픈을 앞두고 작은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짐을 싸가지고 대전까지 내려와서 일을 벌여놓고 보니, 앞으로 일어날 현실적 문제들이 하나둘 떠올랐을 터. 작업에 집중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아차!’ 싶은 순간 사고가 발생했다. 무서워서 기계 근처에는 다시는 얼씬거리지 않을 법도 한데 그렇게 병원을 몇 번 오가고 나니 의식이 더욱 또렷해졌다고 한다. 이 일을 왜 하려고 했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하는지 깨달았다.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고지만, 사고로 인해 내면은 더욱 단단해졌다. 대전에 위치한 목공방 이리히는 2017년 11월에 시작해 약 4개월 준비 기간을 거친 후에 간판을 내걸고 공방의 불을 켰다. 

 


함혜주는 지금 목공을 하고 있지만 작업에 제한 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목공방은 그가 작가로서 작업을 지속하고 작업물을 원하는 수준까지 높이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공방을 계속 운영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만, 앞으로 나무 말고도 다양한 소재에 도전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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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혜주 인터뷰  



목수 함혜주의 하루가 궁금하다.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간, 공방 문을 연다. 어두웠던 공방에 빛을 밝히고 나면 제일 먼저 음악을 튼다. 메인 출입문을 통하는 조립실 문과 뒷문으로 통하는 기계실 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고 사무실로 들어가 커피를 내린다.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탈의실에서 작업복을 갈아입고, 컴퓨터를 켠다. 

오늘의 할 일과 한 주의 주요 일정을 체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블로그와 메일을 확인 후 어제 읽다가 만 책을 1시간가량 읽는다. 며칠 전 수강 문의 주셨던 분의 방문 상담이 잡혀있어 아카데미 수강 안내서와 수강신청서를 테이블 위에 꺼내놓고 기다리는 동안 다시 책을 읽는다. 어떤 이유로 목공에 관심을 두게 되셨고 어떤 기대를 안고 찾아오셨는지를 묻고 공방마다 다른 성격을, 이리히의 지향점과 추구하는 가치를, 교육 과정을 말씀드리고 공방 시설을 안내한다. 

상담을 마치고 주문 가구의 제작 일정을 짜고 도면 파일을 연다. 최종 모델링은 이미 클라이언트에게 보냈지만, 제작 과정에서 까다로운 부분은 몇 번씩 확인한다. 출력한 도면을 들고 기계실로 향한다. 재료 준비를 끝내고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간단하게 식사를 한다. 작업할 때는 몸이 가벼운 것이 집중력이나 빠른 움직임에 좋다 보니 부담스러운 음식을 꺼리게 된다. 판재를 집성해두고 공방에 비치된 끌과 대팻날을 간다. 물을 잔뜩 머금은 숫돌에 갈리는 끌 소리가 기분 좋게 들린다.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끌과 대패를 최적의 상태로 세팅해 둔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경건해지는 시간. 날카롭게 선 날 앞면에 헝클어진 머리칼과 군데군데 붙은 톱밥이 보인다. 기계실로 햇살이 깊숙하게 스미는 것을 보며 저녁 7시에 있을 고급반 수업 준비를 할 때가 왔음을 안다. 

수강생들의 개별 진도에 맞춰 다음 과정과 중요한 요점을 메모해둔다. 해가 기울어 선선해지는 이른 저녁 시간, 인근 공원으로 짧은 산책하러 다녀온다. 3시간가량 진행되는 수업을 위해 의도적으로 쉼에 집중한다.
수업은 밤 10시가 조금 넘어 끝난다. 시끄러운 기계 소리와 수강생들로 북적였던 공방이 다시 텅 비고 어제보다 다듬어진 가구들, 진한 오일 향만이 남아있다. 모두가 돌아가고 나서야 배가 고파온다. 스케쥴러에 내일의 일정을 적어두고 퇴근길에 매콤한 떡볶이를 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옷을 갈아입고 종종걸음으로 공방 문을 닫는다.
 

 

목수를 한다고 하니 주변 반응은 어땠나.
일단, 목수를 한다고 하지 않았다. 몇몇 분들이 목수라고 부르기 전에는 그렇게 불리는 그룹에 속하는지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다. 지인들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목공을 배우고 있다고 했을 때 ‘대단하다’, ‘멋지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내 생각엔 목공이 멋있다기보다 원하는 것을 좇아 매진하려는 모습을 그리 봐주지 않았나 싶다. 부모님은 나를 믿고 지지해주시는 편이라 ‘우리 딸, 응원한다.’ 하셨고.

작품을 보니 예전에 디자인 쪽에서 일한 거 같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제품, 시각, 공간 디자인을 배웠고, 그중에서 제품과 공간 디자인을 주 전공으로 졸업했다. 일본에서 시각 디자이너로, 한국에서 제품, 웹, 시각 디자인 분야에서 일했다. 기획이나 툴을 다루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 공방에 필요한 그래픽 작업은 직접 하고 있다.

 


일본에서 유리공예를 배운 경험이 있다고 들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면서 2년은 정말 착실히 다녔다. 전액 장학금을 받을 만큼 성적도 제법 좋았다. 그런데 2학년 학기말쯤 되니 눈치를 보더라도 공예과 수업을 듣는 게 더 즐거웠다. 전공은 열심히 했고 성과는 있었지만, 그만큼의 보람도, 재미도 없었다. 학기 중에도 디자인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학교에서는 디자인의 역할과 디자이너의 책임에 관해 공부를 하다가 회사를 가서는 클라이언트의 입맛에 따라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현실을 겪으며 혼란스러웠다.
공예과로 전과를 하려했지만 안타깝게도 학칙이 허락하지 않았다. 공예과는 바로 옆 건물에 있었는데 거기 앉아 전공 수업을 들으려면 다시 1년을 준비해 수능과 실기시험을 치르고 입학을 해야 했다. 매일매일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갑갑했다. 무작정 대학을 그만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짝사랑하듯이 조각과 설치미술에 빠져 있다가 데일 치홀리(Dale Chihuly)의 유리 설치 작품을 보고 잊고 살았던 열아홉 살의 나를 마주했다. 당시 국내에는 내가 2년 전 합격했던 대학 외에는 유리공예를 배울만한 곳이 없었다. 국외로 눈을 돌리니 한국과 가까운 일본에 도쿄 유리조형연구소(東京ガラス工芸研究所)라는 곳을 찾게 되었다. 

휴학 후 1년 동안 직장을 다니며 학비를 모으고 일어 공부를 했다. 그간의 디자인 작업물을 정리해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도쿄로 갔다. 평일에는 이케부쿠로에 있는 디자인 회사에 다녔고 주말이면 집이 있던 지유가오카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시나가와에서 유리를 배웠다. 

6개월쯤 지났을 때였나, 동일본 대지진을 겪었다. 지하철이 끊겨 긴 행렬을 따라 무작정 걸었는데 오후 3시경에 나와 자정을 넘겨 집에 귀가했던 그 길이 지금도 생각난다. ‘생(生)이 내게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이렇게 말을 거는구나’ 싶은 생경한 감정이 들었다. 후키글라스(ふきグラス:블로잉 기법) 과정을 마치고 비자가 만료되기 전 1인용 텐트와 옷가지를 챙겨 석 달간 노숙을 하며 자전거 여행을 했다. 딛고 서 있는 땅이 흔들리니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는 나약한 인간의 몸이지만, 생(生)이 던지는 말들을 놓치지 않고 듣고 싶었다. 정말 오롯이 혼자가 되어 자신을 대면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바로 복학했다. 자전거 핸들 방향을 어디로 틀고 페달을 얼마나 힘차게 밟느냐에 따라 주변 풍경이 바뀌는 것처럼 내 뜻과 행동에 따라 삶은 몇 번이고 얼굴이 바뀌더라. 어떤 삶이든 결국 내 의지로 흘러온 것이니 흐지부지 끝내고 싶지 않았다. 원하는 방향으로 걷기 위해서는 그에 수반한 것들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목가구로 눈을 돌린 것도 비슷한 이유인가.
일본에서의 배움만으로는 부족했기에 유리공예를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당시엔 후키글라스 작업을 할 수 있는 공방이나 그만한 시설이 마련된 곳이 없었다. 일을 하고 싶어도 몇 안 되는 공방이나 공장에서 여자라면 마다했다. 

각종 가마와 기계, 집기 몇 개만 해도 1억 원에 가까운 비용이 들어 작업실을 차릴 엄두도 안 났다. 다시 한 번 넘을 수 없는 벽 앞에 섰다고 느꼈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고 디자이너로서 경력을 쌓아가며 인정을 받았지만, 돈벌이 이상이 되지 않았다. 

예쁜 옷을 입고 비싼 저녁을 먹고 좋은 곳에 여행을 가도 삶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청춘 한가운데서, 당당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날들을 살고 있구나’, ‘내가 되고자 했던 나, 살고자 했던 삶의 모습인가’ 하는 마음속 울림을 간직한 채로 몇 년이 흘렀고 어느덧 서른이었다. 

그 무렵 우연히 자연을 모티브로 한 김성헌 작가의 작품을 보게 되었는데 10년을 가슴에 품고 흠모하던 조각과 설치미술의 가능성이 보였다. 무작정 그가 운영하는 메이앤으로 찾아갔다. 공방 문을 열자마자 풍겨오던 나무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 딱히 목수가 되어야겠다거나 가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던 것도 아니었다. 

나무라는 물성을 어떻게 다루는 건지, 이걸로 내가 어떤 작업을 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문가반에 등록해서 가구 제작 기술과 아트퍼니처를 공부했다. 2017년, 동기들과 함께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그룹전을 열었다. 후에 8개월 정도 그곳에서 개인 작업을 계속했고, 시간이 흘러 지금까지 오게 됐다.
 


서울이 아닌 대전에 공방을 차린 이유는.
원래는 서울에서 동기들과 함께 작업실을 차리려고 했지만, 각자의 상황이 달라서 틀어졌다. 고등학교 때까지 12년을 대전에 있었다. 부모님은 계속 대전에 계셨고.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지리적 위치가 좋아 대전으로 왔다. 입지는 현실적인 부분에 중점을 뒀다. 공방에 적합한 조건을 가진 매물이 첫 번째였고 거주 인구, 교통의 편의성, 상권을 따졌을 때 지금 이곳이 적합했다.

공방을 차리기 전에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나.
목공을 배우는 동안 프리랜서로 디자인 일을 하며 운영 자금을 모았고 목공기계 구매, 전기시설, 공간 조닝 등 실질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부분은 공방 스승님께 조언을 구했다. 같은 공방 출신 선배들이 운영하는 공방을 둘러보기도 하고 비슷한 시기에 공방을 준비하는 동기들과 정보를 교류했다. 

공방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에서 분기별로 운영하는 비즈니스 교육과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하는 청년창업 아카데미 비즈니스 심화 교육도 수료했다. 경영과 재무 등 비즈니스 전반에 관한 교육 과정이라 공방을 운영하는 사람이나 작가들이 취약할 수 있는 실무에 도움이 된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예산 규모도 정할 수 있었다. 내부 시설과 집기, 목공 기계와 전동공구를 합한 시설자금으로 4,500만 원, 운영자금으로 1,000만 원의 초기 비용이 들었고 현재의 컨디션을 만들기까지는 1,000만 원 정도가 더 들었다. 

 


 


혼자 공방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공방에서 하는 일을 크게 나누면 개인 작업, 주문제작, 아카데미, 운영관리다. 디테일하게 나누면 스무 가지 정도. 이 일을 전부 혼자서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단순히 몸을 쓰는 일은 일정 시간 내에 빠르게 끝낼 수 있지만, 보도 자료나 전시 계획서처럼 문서를 작성하는 건 제법 시간이 들다 보니 개인 시간을 더 쪼개서 할애하고 있다.
조직에 소속된 개인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책임지고 꾸려가는 공방장이 되니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버거울 때도 있지만, 일상에서 오는 자잘한 스트레스는 오래 쌓아두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마다 타고 난 기질이 있는데 본인의 기질과 다른 성질의 것이 충돌할 경우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신이 어떤 기질을 가진 사람인지를 파악하고 부족한 면모를 키우거나, 그에 맞춰 대응하면 스트레스가 적어진다.

공방 수익 구조가 궁금하다. 또 가구 가격은 어떤 기준으로 책정하나.
목공방의 수익 구조는 교육, 주문제작, 판매, 워크숍으로 대체로 비슷하다. 가구 가격은 재료비, 로스율, 인건비, 디자인, 작업의 난이도, 마진이 포함된 계산법이 있다. 케이스에 따라 다르지만, 주문 가구의 경우 대체로 재료비의 3~4배 사이가 된다. 

 

 


목수로 살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없었나.
공방 공사를 하던 중에 지역 내 공방의 사장님이 불쑥 찾아와서 커피를 달라 하시더니 며칠을 그렇게 오셔서 트집을 잡았다. 초면에 대뜸 목공 선배니까 말 놓겠다는 분도 있고. 처음엔 내가 만만해 보이나, 여자라서 그러나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성별을 떠나 사람에 대한 예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공방 이름에 들어간 ‘이리히’란 단어가 생소하다.
‘해 질 무렵 볕이 닿는 땅’이란 뜻이다. 대전 대청댐을 끼고 소담한 마을들이 모여 있다. 종종 그곳을 드라이브하는데 가을 햇볕이 산기슭과 호수에 번지고 마을에 녹아드는 따뜻한 풍경이 좋았다. 조용하고 고즈넉하지만 풍요롭게 느껴지는 삶, 그렇게 자연에 기대어 살고 싶어서 지은 이름이다.

 


이리히 가구의 특징과 장점을 소개하다면.
정직하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해당할 것 같다.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는데 목공을 가르치면서 무엇을 강조하나.
끈기와 집중력이다. 그럴싸한 것을 쉽게 얻고 소비하는 시대에 살다 보니 시간과 공을 들여 결과물을 얻기까지의 과정이 처음엔 다소 수고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목공은 거친 기계를 사용하고 체력 소모가 큰 작업이지만 반대로 연필 선의 좌우를 나눌 만큼 섬세하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하나 신중을 기해 자신만의 가구를 완성했을 때 맛보는 성취감도 크다.

교육 때문에 개인적 작업이 소홀해지거나 감이 떨어질 수 있는데.
맞다. 항상 경계하고 있는 지점이다. 공방을 준비할 때부터 교육과 주문제작을 병행하면서 개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첫 번째로 공방 유지비용이 적을수록 수익에 대한 압박도 줄고, 무리해서 주문제작을 받지 않아도 된다. 두 번째로 수업 시간과 수강생의 적정 인원을 고려하면 개인 작업 시간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철학자나 사상가들, 디자이너의 책을 읽거나 전시를 본다. 특히 개념미술이나 설치미술, 조각 전시를 보는 게 즐겁다. 기회가 닿는다면 그들의 작업실을 방문하기도 한다. 대전과 가까운 청주에 MMCA(국립현대미술관) 개방형 수장고가 있는데 가끔 그곳에 가 빈둥빈둥 놀다 온다. 숲 속을 무작정 걷는 것처럼 편안하고 작업 욕구가 솟구친다.

 

최소의 의자

작품 모티프는 주로 어디서 찾나.
현실. 주로 인간과 세상에 관한 문제의식, 질문에서 온다. 개인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데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블로그에 쓴 글들이 지금의 작업이 시작됐으니 작업 노트인 샘이다. 조명 오브제인 ‘의식의 램프’는 유령처럼 형상도 없이 내면을 떠돌며 우리를 지배하는 감정의 실체에 대해, 수십 개의 원형 거울로 채워진 ’인드라망’은 세상, 나, 타인의 관계에 대해 고민했던 시절에 쓴 글을 토대로 만들었다. 작품은 개인적 해석이지만 모티브가 되는 것들은 누구나 느끼고, 생각하는 보편적인 얘기들이다.

공방 이름에 있는 ‘아트퍼니처’란 단어가 강렬하다. 아트퍼니처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루이스 설리번(Louis H. Sullivan)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고 말한 것처럼, 가구는 불가피하게 기능에 따른 형태적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상업 가구는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조형 요소를 다양하게 조합하고 소재에 차별화를 두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고 시장은 ‘내가 원하는 것’으로 취향이 세분화 됐다. 

아트퍼니처는 기능을 우선하여 형태를 만든다거나 대중의 소비를 위한 포장(디자인)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보다는 제작자 고유의 시선과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조형성을 우위에 둔다. 상업 가구가 편의를 위한 물건의 개념이라면 아트퍼니처는 정신이 담긴 물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아트퍼니처 자체에 매력을 느낀다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관념이나 생각을 보고, 듣고, 만지는 형태로 구체화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그것은 아트퍼니처가 될 수도 있고 조각이 될 수도 있고 인터렉티브한 설치물이 될 수도 있다.

 


함혜주가 생각하는 ‘좋은 가구’란.
바닥에 엎드려 공부하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책상이고, 십 리를 걸어온 노인에게 쉼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은 벤치다. 마감을 어떻게 했든, 어떤 방식으로 조립했든. 필요에 맞는 가구가 좋은 가구다.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쓰임을 다하면 흔적도 없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가구.

함혜주에게 공방은 어떤 의미인가.
내겐 일터이고 삶이고 꿈인 곳. 그녀들에게는 각자만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존경하는 가구 디자이너나 작가가 있다면.
인간을 위한 디자인의 저자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과 스위스 건축가 피터 춤토르(Peter Zumthor)를 존경한다. 두 사람은 대학 재학 당시 내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디자인의 정신적 가치와 사회적 책임에 대해 강조한 빅터 파파넥은 내게 생산자로서, 디자이너로서의 책임의식과 윤리를 처음으로 생각하게 한 사람이다.

피터 춤토르는 2009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나도 그 무렵 그를 알게 됐는데 독일 메헤르니히에 있는 클라우스 형제 경당(bruder klaus field chapel)을 보고 그의 건축철학과 작품에 매료되었다. 

 


목수, 디자이너, 작가 중에서 어떤 정체성을 지향하나.

우리가 누군가의 가족이고 동료이고 연인이면서 그저 ‘나‘로도 존재하는 것처럼, 나는 목수의 기술로 가구를 만들고, 더 나은 방향으로의 개선을 위해 디자인적 사고를 하고, 어느 때는 외적인 고려 없이 내 목소리를 따라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다만, 원하는 바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면 그로써 만족하고 ‘어떻게 만들 것’인가 보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의 삶을 선택한 데 대한 후회는 없나.
지금껏 그랬고, 앞으로도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그 혜택을 누리고 살겠지만, 내가 한 달에 천만 원을 벌던 팔십만 원을 벌던 그와 무관하게 내 생활의 질이 달라지지 않길 바란다. 자본과 물질에 의지하면 삶이 풍요로울 수 있지만 자유롭지 못하고, 자급자족할 힘을 키운다면 자본에 구속당하지 않고 삶이 풍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에 다닐 때와 비교하면 마음가짐과 행동이 바뀌면서 삶의 만족도는 훨씬 높아졌다. 지금은 한 주에 한 번 도자를 배우고 있는데 마흔쯤에는 텃밭을 일궈 밭농사도 지을 거다. 경험과 감각으로 삶을 채워가는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하다.

 


비슷한 길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신념은 원칙을 알려주고, 원칙은 행동을 자극하고 인도하며, 행동은 신념을 표현한다. ’ 미국의 개념 예술가 아드리안 파이퍼(Adrian Piper)의 말로 내가 자주 되새기는 말이다. 어떤 뜻을 세웠다면 의식을 또렷하게 하고 고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 그 여정은 방황과 질책, 고독과 망설임이 뒤섞여 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잠언을 하나씩 가졌으면 좋겠다.
또 조언이라기보다는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 가까운데, 기술과 자본만 있다면 물리적으로 공방을 꾸리는 건 쉽다. 그러나 공방의 정체성을 만들고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것은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기술 연마에 공을 들이는 만큼, 그 기술이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 지향점을 찾고 자신만의 철학을 가졌으면 한다. 인간에 대해서, 디자인에 대해서, 생활양식과 환경에 관해 공부하며 깊은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이리히만의 문화를 만들어 수강생들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는 공방이 되었으면 한다. 3~4년 후에는 개인전을 하고 싶고, 중년이 될 즈음에는 대청댐 인근에 터를 잡아 볕이 잘 드는 대지 위에 이리히 공방을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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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목수(김민서 저) 목차


006  여는 글

010  신목기 시대를 열다 / 밀플라토, 김규

040  시골 목수 / 길공방, 김보람

070  구조의 미학 / 로즈앤오방, 김수희

100  가구에 감성을 입히다 / 우드워크라이프, 김제은

130  반려동물을 위한 가구 / 핸드크라프트, 신민정

160  공방의 정석 / 온리우드, 이미혜

190  삶을 짜임하다 / 플레이워크, 장현주

220  가구를 조각하다 / 이리히아트퍼니처스튜디오, 함혜주

252  멋지게 다른 가구 / 유진경나무공방, 유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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