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에 거주하는 대만부부의 디자인 스튜디오 ‘애프터룸’

칼럼 / 룬아 리포터 / 2020-07-23 0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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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공간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는 물건
가치관이나 경험은 디자인의 본질에 담기는 것
많은 돈을 멋진 의자가 아닌 명품가방에 소비하는지 세태

 

홍민(Hung-Min Chen)과 첸옌(Chen-Yen Wei)에게 스웨덴이라는 나라는 설렘으로 떠나는 신혼여행지와 다름없었다. 대만에서 만나 부부가 된 디자이너 커플은 여유로운 유학과 신혼생활을 즐기고 돌아오자는 마음으로 스웨덴 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그 짧은 계획은 어느새 예쁜 딸과 7년이라는 시간, 그리고 애프터룸(Afteroom)이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로 늘어나 있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가치

애프터룸은 이름에 시간을 담고 있다. After와 Room이라는 단어를 조합하여,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공간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처음부터 디자인 스튜디오를 위해 지은 이름은 아니다. 결혼 직후 홍민이 유학을 선택했고, 첸옌은 남편이 공부하는 동안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스톡홀름의 공간을 여럿 조사해 본 결과, 숙박업은 그리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었다. 스웨덴에서 화재 및 장애인 시설 등에 대한 규제는 매우 엄격하고 복잡하다. 그렇게 게스트하우스를 위해 지었던 이름은 후에 디자인하는 듀오의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우리는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팀이에요." 이제는 확신 있게 대답하지만, 언제나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럽 안에서의 인지도가 없던 시기에, 이 동양인 부부는 제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기까지의 모든 기회와 과정을 스스로 일궈내야 했다. 스톡홀름의 작은 사무실에서 디자인한 제품을 대만에서 제작하고, 다시 유럽으로 들여와 유통했다. 강한 의지와 끈기가 필요한, 하지만 의지와 끈기만으로는 하기 힘든 일을 1년가량 이어가던 중, 스톡홀름 디자인 페어에 출품했다가 메누(Menu)를 만났다.

주방용품을 주로 다루고 있던 이 덴마크 회사는 리브랜딩 계획 중에 애프터룸의 의자를 발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애프터룸의 주요 클라이언트가 되었다. 이 만남으로 인해 애프터룸은 디자인 서비스 스튜디오로 당당히 스톡홀름에 자리 잡게 되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이 디자인할 때 변함없이 중심으로 두는 기준은 바로, 타임리스(timeless)다. 짧은 순간 타올랐다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닌,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는 물건을 만들고 싶었다.

 

 

▲ Afteroom Chair_Location_2

 

▲ Afteroom Lounge Chair

 

홍민은 콘스트팍(Konstfack)에서 산업디자인 석사를 마친 후, 가구 디자인 석사를 한 번 더 졸업했다. 매우 다른 성향의 전공으로, 방법론 중심의 산업디자인에 비해 가구 디자인을 연구할 때는 자신의 상상력과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가구를 만들 때에도 소비자를 이해하고 제조 공정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며, 다소 길고 대조적인 학업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기분 좋게 설명했다. 스웨덴에 오기 전 그는 대만에서 전자제품을 디자인하는 사람이었다.

터치스크린만 사용하는 요즘에 비해 훨씬 재미있게 일할 수 있어 디자이너로써 운이 좋았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무서운 산업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휴대폰이 2년 뒤에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쓰레기로 전락하는 사실에 회의감이 들었고, 그 반감으로 더욱 시간과 유행에 구애받지 않는 물건을 만들고 싶어졌다고 했다. 망가진 곳을 수리해서라도 애용하고 후손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애프터룸의 목적이 되었다.

첸옌은 패션 디자이너였다. 모든 디자인에 이유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유분방한 창작자이다. 그녀는 객관적인 매력을 알아볼 줄 아는 눈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 둘의 만남은 시너지가 좋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홍민의 스케치는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첸옌의 기준을 통과했을 때에만 클라이언트에게 보낼 수 있다고 한다. 왜 남편과 함께 학교를 다니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녀는 할 일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애프터룸을 시작하기 전 홍민이 스웨덴 친구와 오픈한 Chen Karlsson이라는 회사가 있는데, 공부하느라 바쁜 남편 대신 첸옌이 운영을 도맡았다. 그 와중에 임신과 출산, 육아까지 해내야 했다.

홍민은 이런 아내 덕분에 지금의 애프터룸이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그의 든든한 파트너에게 따뜻하고 개구진 눈빛을 보냈다. 대만에서 열정을 쏟았던 패션 디자인과 지금 하는 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며, 배경이 다른 덕에 서로에게서 얻을 점이 많다고 차분하게 말하는 첸옌의 앳띤 외모에서 어른스러움과 평온함이 느껴졌고, 멋진 디자이너이자 아내, 그리고 엄마의 모습이 겹쳤다.

애프터룸의 디자인은 단연 매력적이고 현대적이지만, 유행을 의식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대만 사람의 손길이 강하게 느껴지는 디자인이 아니라고 하니, "우리의 배경이 디자인에 드러날 필요는 없어요. 가치관이나 경험은 디자인의 본질에 담기는 것이지 겉으로 티내는 것이 아니에요"고 했다. 백스테이지에 머무르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욕구보다 오로지 디자인이기에 진정 타임리스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Afteroom Coat Hanger

 


같은 듯 다른 북유럽

요즘 유럽시장은 가구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는 것 같다. 매년 4월에 열리는 밀라노 가구박람회를 방문하면 확연히 느낄 수 있는데, 전반적으로 가격대가 낮아진 것은 물론이고 '아트'를 표방하는 회사가 아니고서야 모두 플랫 팩(flat pack) 구조의 가구를 개발하고 있다. "어떤 시각으로는 이케아스러워지고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홍민이 조심스레 입을 뗀다. 다행인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북유럽 브랜드의 선호도가 높은 추세이며 Muuto, Hay, Menu 등의 브랜드들이 급부상하거나 여전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모두 덴마크 회사들이다. 스웨덴에도 실력이 출중한 디자인 브랜드가 많은데, 어째서 알려진 것은 이케아뿐일까? 마침 최근에 메누 대표와 그 이유에 대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나름의 추측을 통해 얻은 결론으로, 스웨덴은 큰 규모에서 시스템적인 일을 잘하기 때문에 대기업을 세우고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스웨덴 것이라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대한민국 대중에게 인지도 있는 북유럽 가구 브랜드는 단연 이케아다.


▲ Afteroom Chair for MENU_01

 

▲ Afteroom_Caddy_Location_04


그러고 보면 세계적인 SPA 브랜드, H&M도 스웨덴 것이 아니던가. 헬싱키와 코펜하겐에서도 디자인 페어가 개최되지만, 스톡홀름 디자인 페어가 가장 크고 주목받는 이유도 같은 논리에서란다. 반면 덴마크 회사들은 독립적이고, 독특하면서 가장 트렌디한 성향을 띤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을지 몰라도 특유의 스케일에서 할 수 있는 개성 있고 재미있는 제품들을 만들어낸다는, 꽤 설득력이 강한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다면 메누가 애프터룸을 좋아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는, 자신들이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디자이너들이기 때문이라는 덤덤하고 우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홍민과 첸옌은 불평하지 않는다. 주어진 일을 즐겁고 감사하게 해낼 뿐이다. 애프터룸은 메누와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그들의 디자인을 원하는 손길을 뿌리쳐야 하기도 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달콤한 유혹을 다 품는 것보다, 신뢰를 바탕으로 단단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했고, 그 선택이 가져온 안정감을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었다. 메누의 제품군이 어느 정도 확립된 상태이고, 당분간 신제품 출시보다 브랜드 홍보에 힘을 기울이게 돼서 다른 회사와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에 설렘이 묻어났다.

스웨덴 라이프

벌써 7살이 된 홍민과 첸옌의 딸은, 부모의 어눌한 스웨덴어 발음을 지적해주곤 한다. 스웨덴어를 배워보려 노력해보지만, 시간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스웨덴 사람들의 유창한 영어실력 때문에 의지를 불태우기 쉽지 않다. 스웨덴어 조금 못하면 어떠랴, 이 겸손한 부부는 자신들은 운이 좋다고, 조금 긴 신혼여행쯤으로 생각하고 온 유럽에서 클라이언트도 생기고 로열티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고 했다. 이방인으로써의 고충보다는 오히려 그 독특함 때문에 생기는 이점을 발견하고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 Chair03


언제까지고 스웨덴에서 살고 싶으냐는 질문에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립할 때쯤에는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그러려면 앞으로 10년은 더 있어야겠지만 이미 지난 7년도 굉장히 짧았어요" 라며 바쁘게 살아온 지난날을 순식간에 회상했다. 하지만 채워지는 만큼 부족함도 얼굴을 드는 법, 삶에서 더 바라는 점으로 홍민은 자기만의 시간을, 첸옌은 더 자주 대만에 가볼 수 있게 되기를 꼽았다. 타지에서 단란하게 가정을 이루고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고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잠시 미뤄둔 채 일상의 모든 것을 셋이 밀접하게 공유하는 것. 언젠가는 홍민이 혼자 배낭여행을 떠나고, 첸옌이 친정에 더 자주 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아무리 새로운 삶에 적응하고 사고방식과 생활패턴이 바뀌어도, 원래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은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니까.


 


 

많은 세금을 내고 사는 복지국가는 대체로 빈부격차가 적고, 개인이 그리 많은 부를 축적하고 살지 않는다. 따라서 자연스레 물욕과 과시욕이 떨어진다. 어째서 많은 돈을 멋진 의자가 아닌 명품가방에 소비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 홍민을 보며 웃음이 났다. 스웨덴에 산다는 건 이렇다.

애프터룸은 굳이 자신들은 주류가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들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게 좋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라며 잠깐 반짝하고 식어버리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고 힘을 주어 말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일관적인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싶다는 그들의 소망처럼, 그리고 애프터룸이라는 이름처럼, 둘의 디자인과 삶은 시간과 함께 농익어갈 것이었다.

사진 룬아 l 사진제공 Afteroom( www.aftero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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