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사천 '남양정미소'의 공간 사용 변경서

Interior / 김은지 기자 / 2018-09-17 0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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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에 지어져 3년 전까지 운영을 해오던 몇 안 되는 근대 생활공간 사천의 남양정미소가 혁신적인 문화공간으로 바꿨다.

 

출입문 양 쪽에 강아지처럼 앉아 입구를 지키고 있는 고물 기계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에 닿을 듯한 탈곡기가 압도적인 포스로 공간을 채우고 있다. 그 옆으로 백남준의 영상 작품을 오마주한 텔레비전 탑에서 한 남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 벼를 바닥에 이어진 구멍에 밀어 넣자 안쪽으로 빨려 들어간 나락이 위아래를 오가며 껍질을 벗고 쌀이 되어 떨어지는 장면이 반복된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이 곳에서 매일 반복되던 정미소 풍경이다.

남양중학교 앞 남양정미소  

 


공간을 작업한 박성식, 이가형 작가는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선후배로 20년 동안 고락을 함께 했다. 5년 전, 박성식 작가가 경상대학교에 교수로 부임하고, 중국에서 활동하던 이가형 작가가 고향으로 돌아와 같은 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다시 한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남양정미소는 1954년 즈음에 지어졌다. 도면도 없이 한 줄짜리 기록으로 서류에 남아 있는 것이 전부이지만, 이가형 작가는 구석구석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공간의 역사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정미소는 할아버지가 산에서 베어 온 나무로 직접 만들었다. 모아 놓은 나무 중에 그나마 크고 곧은 것들은 그냥 쓰고, 모양이 불안한 것들은 톱으로 대강 켜서 골조를 세운 덕에 정미소의 천장과 기둥은 똑바른 것이 없다. 하지만 정미소의 마스코트인 커다란 기계만큼은 대전에서 유명하다는 목수가 와서 한 달 넘게 먹고 자며 만들었다고 했다.


 

 

 

 

정미소는 꽤 잘됐다. 벼농사가 전부였던 당시에는 일 년 내내 기계가 멈추지 않을 만큼 바빴고, 1968년에 증축한 창고는 언제나 가득 차 있었다. 정미소는 현금 거래 대신 쌀 한가마니에 한 되씩 받는 식이었기에 쌀값이 금값이던 시절에는 벌이도 제법 쏠쏠했다. 하지만 90년대부터 방앗간에서 개별 정미기계를 들여 놓으면서 마을의 정미소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남양정미소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간간히 탈곡을 해주는 정도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2년 전에 마침내 폐업 신고를 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가형 작가는 말할 것도 없고, 박성식 작가 역시 이런 공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박 작가는 조심스럽게 이 작가에게 더 이상 가득 찰 일 없는 창고를 개조해볼 것을 제안했다.

고물을 보물로 만드는 일  


 

 


주차장까지 2천 평에 달하는 공간은 크게 탈곡을 하는 정미소와 쌀을 보관하는 창고로 구분된다. 정미소는 트러스와 기계를 그대로 살려 카페로, 창고는 갤러리 겸 박성식 작가 작업실로 쓴다. 그 가운데 기름을 팔던 작은 공간에는 주변 지인들로부터 하나둘 모은 책들로 미니 도서관을 만들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차마 개조할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심각한 상태였다. 70년 가까이 쌓인 먼지는 말할 것도 없고, 흙벽과 양철 지붕이 낡아 비가 새고 쥐가 들끓었다. 작업은 쓰레기를 치우고 덧대어진 양철 슬레이트를 걷어 내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돈 들여 전문가에게 맡길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공간이니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할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만들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4년이 걸렸다.



 

리노베이션에 필요한 재료도 직접 구했다. 웬만한 재료는 이가형 작가의 ‘보물창고’에서 나왔다. 창고에는 할아버지가 생전에 켜 놓으신 아카시아 나무부터 집 앞 기찻길의 폐목, 화장실 소변기, 경운기 손잡이까지 남들이 보면 쓰레기와 다를 바 없는 물건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작품의 재료다. 하나 둘 먼지를 털어낸 고물들로 세상에 하나뿐인 조명을 만들고, 테이블을, 오브제를 만들었다. 

 

 

 

출입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벽면에는 할아버지가 직접 나무를 켜던 톱날이 있고, 카페 주방에 달려 있는 폐침목으로 만든 조명, 카페에서 갤러리로 가는 길 벽면에 시골 농기계 부속품들을 용접해 만든 오브제 등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역의 문화 공간으로



 

 

 

 

작업실과 갤러리를 겸하는, 그래서 언제든 전시를 할 수도 있고 사람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많은 작가들의 로망이기도하다. 홍대 앞 좁은 작업실을 15만원 씩 모아서 세 명이 함께 나눠 쓸 때도, 학교 실기실에서 작업을 할 때도 언젠가는 그런 공간을 만들겠다는 꿈을 꿨다. 그리고 그 생각이 전에는 스스로를 위한 공간에 대한 로망이었다면, 지금은 주변 사람과 함께 나누는 공간에 대한 열망으로 바뀌었다.
 

 

이가형, 박성식 작가

 

최근 성수동 대림창고, 홍대 엔트러사이트 등 재생 건축을 활용한 카페가 잘 되면서, 비슷한 콘셉트의 공간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 인테리어 트렌드로 인식되어,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하는 공간도 분별없이 생겨나는 중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카페 정미소’와 ‘공간 쌀’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실제 자신의 시간이 묻어 있는 공간을 지켜 내고 그 안에서 현재를 발견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 덕에 할아버지가 만들고 아버지가 이어오던 정미소는 카페로, 갤러리이자 도서관으로 역할을 달리해 지역의 문화 공간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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