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案) 에서 바깥으로 확장하는 물결

Art / 배우리 기자 / 2018-03-30 00: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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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안 위에 물길이 났다. 들어오라고 출렁인다. 아무 생각 없이 그 물에 발을 담그면 될 것 같다. 첨벙거리다보면 내가 만든 진동이 건너편에 가닿을 것만 같다. 물결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헤엄 쳐볼 생각을 하기도 전에 우드아티스트 조용원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경기도미술관의 <크라프트 클라이맥스>에 낯선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조용원 작가의 ‘파문’. 상판의 조각으로 봐서는 테이블이라고 하기엔 멋쩍고 누워있는 조각이라고 해야 할까. 목공예 작품과 함께 있지 않았다면 나무라는 것도 모르고 지나칠 만큼 낯설었다.


작업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조용원 작가의 전공은 목공예다. 그는 목공예를 선택하고도 나무라는 재료에만 매달리지 않고 친구들의 실기실에서 흙도 만지고 쇠도 만지고 그야말로 ‘이것저것’ 작업했다. 졸업이 닥치자 가구 회사를 골라 입사한 친구들과 달리 막상 ‘할 게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학교에 남는 일이었다. 대학원을 마치고는 그저 유행하는 대로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사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는 작업을 하기 위해 덜 진취적이고 약간 느린 척 했을 뿐이다. 목공예에 관해서는 새로운 걸 배울 기대가 없었던 그는 유학에서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낀 분야 ‘장사’를 배우기로 하고 산업공예과에서 디자인 마케팅을 전공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그에게 이미 정해져있던 ‘작업자’ 신분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3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다. 어차피 같이 할 수 없는 마케팅은 과감히 버렸다. 대치동의 집으로부터 한 시간 이내의 작업실을 찾던 중 그는 20일 만에 현재 작업실 근처, 가구 공장, 자재상, 철공소 등이 자리 잡고 있던 용인의 동림리를 발견했고, 공구가방 두 개만 덜렁 들고 들어와 작업을 시작했다.

 


3년 동안 참은 창작욕을 분출하려고 하니 작업할 것이 줄을 섰다. 여러 작업을 동시에 해서 과정상 기다리고 쉬는 시간도 아꼈다. 앉을 필요도, 시간도 없으니 필요한 것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 때 작업실에는 의자도 없었다. 그렇게 1년을 준비해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그 작품 중 반은 나무볼이었다. 유학 전에는 꼭 나무 작업에만 주력하지 않았는데 영국에서 나무의 새로운 매력을 몸으로 체험하고 온 다음에는 나무에 집중했다. 당시 한국에는 산업용으로밖에 인식하지 않던 목공선반으로 작업하게 된 계기도 그렇다. 영국에서 마케팅을 배우는 동안 사실 그는 눈으로 작업할 것을 좇고 있었던 것이다. 주말이면 2-3만원을 들고 새벽 다섯 시부터 포트벨로 벼룩시장을 찾았다. 매주 2만원 안에서 살 수 있는 최고의 컬렉션을 모았다. 그 때 최고의 물건을 고르는 쾌감은 작업의 쾌감을 대신해 주었다고 한다.

 

 

 당시 쾌감을 잇는 것들은 작업실 복층에 자리잡은 응접실 겸 쉬는 공간에도 모여 있다. 초창기의 볼 작업과 트레이 작업 몇 개를 제외하고는 디자인 작품들이 자리 잡았다. 하얀색과 노란색의 확장형 테이블에 삼십년도 더 된 조명, 빨간 제네바 엑스라지 스피커, 리트벨트 의자 위 사스키아 디즈의 종이백, 필립스탁의 파리채까지. 남이 만든 걸 고르는 일, 그것은 그에게 현재 작업을 이어나가는 안목을 선사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조용한 ‘원’ 작업자


 

사실 초창기 볼 작업은 선반 작업에 방점을 두기보다 나무의 질감 변화를 눈 여겨 보아야 한다. 그는 나무 볼의 표면을 일일이 조각했다. 20년 전 쯤 그의 나무 볼을 본 사람들은 나무로 보지 않았다. 아니 나무로 보지 못했다. 그가 제시한 나무 볼 자체도 낯설었지만 질감도 낯설었던 것은 나무의 결을 그대로 두기보다 나무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던 작가의 욕구가 나무에 자신만의 결을 조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색을 더해 나무를 더 나무답게 만들면서도 나무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작업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의 테이블이 낯설었던 이유를 여기서 찾아들어갈 수 있다. 낯섦의 첫 째 이유는 강렬한 색이다. 나무는 본연의 색을 잃고 낯선 색을 입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그 화려한 색은 우리에게 나무를 자세히 볼 틈을 준다. 그 틈에서 조금만 머물면 푸른색과 미끄러운 표면에 갇혔던 눈매가 어두운 곳에서 시력을 점점 되찾듯 서서히 드러난다. 그렇게 보면 나무 본연의 색은 박탈당하거나 강제적으로 덮인 것이 아니라, 작가가 낯선 색을 스스로 받아들이도록 나무를 기다려주면서 느리고 세심하게 작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색을 입히는 것이야말로 작가 나름대로 해석한 ‘나무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드러내는 작업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나무를 낯설게 만드는 것은 나무의 결에 더해진 작가 자신의 결이다. 나무 중심 부분의 판재 마구리면을 길게 잘라 대칭으로 이어 붙이는 작업도 초기부터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데 낙동이나 샌드블라스트로 결을 극대화하고 직선이나 곡선으로 길을 낸다. 그는 이 과정에서 나무와 타협한다. 솜씨를 자랑하려고 하면 자연과 자신의 패턴 균형이 깨진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작가가 아슬아슬한 균형을 맞추고 나면 나무에 새긴 결에 운동성을 부여하며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하나하나의 언덕을 넘을 때마다 좌절하는 빛이다.


빛이 도와줄 것을 믿고 조용원 작가가 파내는 것은 물결 그리고 동심의 파문이다. 수없이 마주했을 나무를 그는, 오늘도 느리지만 완벽하게 깎고 다듬는다. 그리고 나무에 새로운 물을 들인다. 나무에게 전혀 낯선 물인 푸른색은 정체되어있는 나무를 흐르게 만든다. 작가의 나물길이 내게로 미칠지 말지는 내가 가진 마음의 깊이 문제다.


작가가 숨겨놓은 식탁

 

 

 온통 곱게 빗어 넘긴 나뭇결 작품들이 들어찬 그의 작업실에 평범한 작품도 있긴 하다. 깊고 붉은 빛을 뿜어내는 중국의 원조 자단으로 만든 2미터는 될법한, 사실 전혀 평범하지 않은 웅장한 테이블이 그것이다. 공부하는 아내를 위해 책상 하나 만들어주지 않는 작가는 이 테이블도 의뢰 받아서 만든 것이 아니라 ‘그냥’ 만들었단다. 자단으로 손을 풀면서 애쉬로 ‘작업’하는 욕심 없는(?) 작가다.


식탁을 보면 다시금 그가 공예 전공이었다는 사실이 생각난다. 하지만 막상 조용원 작가 자신은 작품이 공예라고 불리든 순수예술이라 불리든 신경 안 쓴다. 심연을 파내고 깎아 컵도 올려놓을 수 없는 그런 테이블이 ‘식탁’이라는 가구로 불리는 것도 별로 상관없어하는 눈치다. 식탁의 형식을 빌렸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하고, 예술식탁을 주장하지 않는다. 보는 사람 마음이다. 작업 초기에는 공예나 기능에 어떻게 걸쳐볼까 머리를 쓰기도 했지만 “지금은 기능이 없어도 이 자체로 지 몫을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다만 주위에서 공예가 뭐 이러냐는 핀잔을 주면 대충 불편하게 쓰라고 맞받아친다.

 

 

 진짜 멋 앞에서 불편함은 기도 못 편다는 것을 작가는 알고 있다. 상이 조금 울룽불룽 하면 어떠하리. 잔이 못 올라가도 취하게 만들어준다면 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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