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구 디자이너의 탐나는 영리함

디자인 / 허재희 기자 / 2020-05-21 00:38:22
  • -
  • +
  • 인쇄
원할 수록 기존 제품들의 아류작이 나와
목수, 나전칠기 장인들과 협업
가구 양식마다 별도 브랜드 개발

가구디자이너 임문택의 전업은 광고디자이너였다. 심지어 ‘잘’했다. 좋은 아이디어를 빨리 산출할 수 있었고, 클라이언트들은 그의 아이디어와 작업 결과물을 좋아했다. 마흔 중반에는 미국의 광고업계를 정복하기 위해 삶의 터전을 미국으로 옮겼고, 7년 만에 메이저 광고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목표가 눈앞에 다가온 순간 그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그가 강원도 내촌목공소에 있을 때였다.

 

 


‘진짜’를 위한 선택
업으로 삼은 것을 잘하고 원하는 만큼의 피드백이 오면 기뻐야 하는데 업계에서 인정을 받을수록 ‘이건 아니다’란 생각이 짙어졌다. 논리가 논리를 만드는 과정에 질려버린 거다. 또 만든 결과물에 공중에서 사라져버리는 느낌이 싫었다.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창작 활동을 하고 싶어 미국에 있으면서 퇴근 후에 미니어처 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루는 아내에게 가구를 만들어야겠다고 말했다. 우려 섞인 그의 목소리와 달리 아내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스무 살 때 그게 당신 꿈이라고 했잖아.” 아내의 그 한 마디에 잃어버렸던 꿈을 다시 찾았다.


하지만 넘쳐나는 아이디어를 손재주가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빠르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와 그렇지 못한 분야를 분리하고 잘할 수 있는 것에 매진했다. 주변 사물을 재해석하다 보면 자연스레 스케치가 나왔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사실 처음엔 자신이 없었다.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기에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첫 번째 의자 작품 디자인을 4년 전에 완성해 놓고도 만들기에 돌입하기까지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 1년은 핀율, 조지 나카시마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원하는 디자인이 나오기는커녕 기존 제품들의 아류작이 나왔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야 자기 본연의 디자인을 신뢰할 수 있게 됐다.

 

 

 

디자인을 구체화해 줄 사람을 찾는 것은 운명에 맡겼다. “가구를 만드는 게 내 운명이라면 이 운명을 믿어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계산하지 않고 가장 처음 연이 닿는 사람과 작업을 진행하기로 마음먹었죠.” 첫 번째 작업을 마치고 얼마 전 두 번째 작업을 함께 한 김정보 목수와 김용겸 나전칠기 장인도 그렇게 만났다. 미국에서 진행하는 작업은 동양의 미학을 이해할 수 있는지를 우선으로 고려했다. 그의 디자인 철학인 단순함은 동양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지 나카시마를 통해 일본의 전통을 접하고 현재는 한국의 디자인에 관심을 두고 있는 피터 배트콕(Peter Battcock)을 소개받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작할 때는 나무 선택, 가공, 마감 방법 등에 있어 각 나라의 특성을 반영하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작업한 것은 옻칠 마감을 하지만 미국에서 작업한 것은 오일 마감을 하는 식이다. 또 한국과 미국에만 국한하지 않고 유럽, 아프리카, 중동 등으로 협업 네트워크를 확장해 각 나라의 장인이 만든 가구가 해당 국가에서 판매되는 시스템 구축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기본에 충실할 것
가구를 디자인하는 일은 생업이다. 가구로 정기적이고 생활을 영위할 만한 수입을 내야 한다는 의미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어도 생활이 불가능해지면 그것은 괴로운 일로 전락하고 만다. 그래서 그는 이 일에 철저히 마케팅 개념을 도입했다. 공급과 수요가 불균형한 상황에서 마케팅은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다. 하지만 마케팅을 어렵게만 생각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수공예가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이들에게 그는 ‘기본’만 잊지 않으면 된다고 말한다.

 

 

“마케팅은 교과서대로만 하면 돼요. 그런데 기본을 잊어버리고 자꾸 새로운 것만 만들려고 해서 어려워지는 거죠. 마케팅의 기본은 ‘제품, 가격, 유통’이에요. 우선 어떤 제품을 만들지 생각해요. 그리고 그 제품의 경쟁력을 확인하죠. 가격을 정한 후엔 그 가격의 경쟁력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해요. 다음은 유통이에요. 숍에 납품을 할 건지, 인터넷으로만 주문을 받을 건지, 본인 숍을 오픈할 건지 선택하는 거죠. 이것들을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세일이나 광고에 의존해 상생과 공존이 어려워지겠죠.”

 

그는 세 라인의 가구 브랜드를 만들고 각각의 ‘제품, 가격, 유통’을 달리한다. 기본 브랜드는 자신의 이름을 딴 ‘MOON IMM’이다. 이 브랜드는 철저히 자신이 하고 싶은 디자인의 가구를 만들고 그 스타일을 수용하는 이들을 타깃으로 한다. 가구의 크기 자체가 무척 크기에 애초에 미국 시장 유통을 겨냥했다. 

 

 

▲ 남녀의자 브랜드 'DIEDERCHAIRS'

 

두 번째 브랜드는 남녀의자를 만드는 ‘DIEDERCHAIRS'로 남성과 여성을 의미하는 독일어 DER, DIE에 의자를 의미하는 영어 CHAIR의 합성어다. 경제학의 재미이론을 도입해, 그는 가구를 제시하는 역할만 하고 그 안에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건 의자에 앉는 사람들의 몫이다. 마지막은 WOOD ZANE인데 기획 단계이므로 이 브랜드의 콘셉트는 비밀에 부친다. 확실한 건 가격도 기능도 모두 21세기 대중의 흥미를 자극하는 제품 브랜드가 될 것이라는 거다.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들떠 있었다. 그에게는 이미 향후 십 년을 위한 디자인이 완성돼 있다. 그의 홈페이지 gallery 카테고리에 있는 미니어처들이 바로 그것이다. 매년 새로운 것을 세상에 내놓을 작정이다. 지금은 그 계획들을 구체화하면서 십 년 후에 할 계획을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중년 남자의 얼굴에서 천진함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저작권자ⓒ 우드플래닛 뉴스 프레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독자의견]

댓글쓰기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WOODPLANET Newsletter

우드플래닛 최신기사, 관련정보 등을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동의 하시겠습니까?

우드플래닛은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령에 의거하여,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함에 있어 정보주체로부터의 이용 동의 여부를 사전에 고지하고 있습니다. 정보주체가 되는 이용자께서는 아래 내용을 확인하시고,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ㆍ수집 이용 목적 : 우드플래닛과 구독자를 위한 의사소통 경로 확보

ㆍ수집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 이메일

ㆍ보유 및 이용 기간 : 메일링서비스 해지시 까지(해지시 정보파기)

뉴스레터에 등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