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김진식 '디자이너의 돌'

Furniture / 배우리 기자 / 2018-12-06 00:3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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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각적인 단서는 없다. 그래서 잠시 머뭇거림이 필요하다. ‘뭐지’ 하는 마술의 ‘프레스티지’ 같은 것이 말이다. 그 순간이 지나도 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벤치로 쓸지 테이블로 쓸지 그저 바라보기만 할지는 답을 위해 잠시 머뭇거렸던 사람의 몫이다. 사물을 건네받고 난 후 우리는 닫힌 정답으로부터 완전 자유다.

HalfHalf wide console,

 

김진식 디자이너의 작업실에 들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아챌 만큼 그는 돌을 애정한다. 그가 벼룩시장에서 하나 둘 모아온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상태의 돌들은 볼론의 바닥재를 가지고 만든 골프코스 위에 가지런히 디스플레이 되어 그에게 언제고 영감을 준다.

질료로 형 상상하기 

 

Clivage Rectangle Bowl 03 @Cedric Widmer


작업실에서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것은 하얗고 푸른 대리석 테이블, ‘Wave’. 역시 돌이다. 대리석의 물결은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왔다. 디자인이 소재의 패턴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디자이너가 소재에 생소한 디자인을 입혔다기보다 소재가 디자인을 일러준 셈이다.

Stone Age Black 4 & 7

 

 가구 회사에 3년을 다녔지만 ‘디자이너’로서의 작업은 오로지 도면을 치는 것이라 소재와의 만남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컴퓨터 화면의 그림이 완성이자 주인공이고, 소재는 부수적인 것이었다. 유학 도중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할 때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디자이너가 제작 전에 리서치를 하고 프로토타입을 직접 만들고 천이든 나무든 본인이 직접 만들고 과정을 다듬어 최종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진짜’를 만난 것이다. 그 후로 스위스 에깔로 옮겨 공부를 할 때도 하얀 바탕의 그림보다는 목업을 만들어야만 안심하고 확신했다. 지금도 도면보다는 폼으로 직접 모양을 따고 그것을 가지고 기술자와 의논해서 작품을 채워나간다.

 

 C


돌과의 인연은 이렇다. 프랑스 금속 브랜드 크리스토플과 디자인 협업을 하게 되면서 대리석을 쓴 것이 질료와 몸이 만났던 오랜 기억을 불렀다. 김진식의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감각은 그렇게 돌아왔다. 그가 할머니 댁에서 놀았던 이미지들을 자주 회상하게 된 것도 그러니까 오래된 일은 아닐 것이다. 돌이 가진 패턴, 무게, 질감이 흥미롭게 다가왔고, 협업이 끝난 뒤에도 테이블이나 책상 위 소품 등의 제작을 이어갔다.

 

HalfHalf circle bench 01

각각의 잠재태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그것을 형상으로 변신시키는 김진식 디자이너의 작업은 다른 재료들에도 적용된다. 철은 돌돌 감고, 알루미늄은 살짝 접어준다. 공정이 단순한 만큼 구조 또한 단순하다. 재료에 맞게 최소로 가공한 두어 가지 재료는 그저 끼우는 방식으로 결합하는데 본드나 피스 같은 부수적인 재료들이 낄 틈이 없다. 모든 디자인의 과정에서 소재는 소외당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결과물도 사진에도 소외당하지 않고 실물미모를 자랑한다.

쉬운 주관식

 

Stone Age Yellow 8


디자이너는 자신이 만든 오브제는 쉬웠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누구나 당당히 감상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그는 답을 여러 개 주고 무엇을 찍든 정답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작품을 주관식으로 던진다. 그가 소재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고 단순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디자인 요소가 많아지고 군더더기가 붙을수록 상상의 여지는 줄어들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 김진식


최대한의 생략과 최소의 디자인은 함축적인 무엇을 생산한다. 툭툭 잘라 다섯 등분한 대리석 덩어리(‘Stone Age')나 지그재그로 접힌 알루미늄 파티션이 그렇다. 보통의 산업디자이너들처럼 ‘이렇게 써보세요’라고 해결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결을 미룬다. 자연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 이게 ‘자연이다!’라고 단언하지 않고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미를 단순한 도형을 통해 탐구한다. 그런데 결국 쉬워서 더 어려운 주관식이 된다. 그의 작품의 층위는 생각보다 다양해서 결코 쉽게 간파당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처음 작품을 보고 머뭇거리는 시간을 가졌다고 해도 계속해서 다시 머뭇거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이 예술품에 가까워지는, 그가 원하는 시처럼 되는 것이 이 지점이다. 머뭇거림의 시간동안 우리는 시를 읽듯 음미하면서 모든 감각을 총동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몸의 기억력을 위해

 

김진식 디자이너의 작업실 테이블


그가 아무리 여지를 남겨놓아도 가끔 사람들은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만 보고 상상하기 자체를 멈추는 경우도 있다. 아직까지 사물이 생활에 편리함만 주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간혹 있는 모양이다. 스테인리스스틸 거울로 만든 ‘HalfHalf'에 대해 어느 관객에게 쓰기에 너무 날카로워 다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3-piece 02

 

다치도록 마감이 되지도 않았지만 실크나 오리털 파카를 마음대로 세탁기에 넣는 사람은 없듯 사물은 각각에 맞는 대우를 받아야 된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나무와 금속, 플라스틱 등 다양한 소재들의 특성을 살리는 작품들을 통해 각 물성에 맞는 감상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면서 너무 감상에만 집중하지 않고 기물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직접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작은 장치들을 잊지 않는다. 가령 'HalfHalf'는 벤치나 테이블로 쓰이는데 앉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스크래치를 넣는다든지 하는 기능적 배려 말이다.

 

신비감이 느껴지는 작업실 의자

김진식 디자이너의 핸드폰은 쿼티 자판이 있는 블랙베리다. 터치감이 살아있는 핸드폰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그건 최소를 추구하면서도 결코 잃을 수 없는 감각을 위한 결단인지도 모른다. 꾹꾹 누르는 느낌, 거친 돌을 만지는 느낌. 이런 것들을 살리는 것. 잃어버렸던 흙장난의 감촉이 살아났듯 화면 속에 숨어버린 사물의 감촉과 존중을 살리는 일을 그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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