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부엌을 곱씹게 하는 배오개 부엌 박물관

라이프 / 이다영 기자 / 2020-06-15 0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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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동 재생건축
옛 부엌에 대한 향수
옛 정서로 가득찬 공간

▲ 배오개 1층 전시실

 

 

우리의 부엌이 점점 내몰리고 있다. 협소해진 공간을 따라 음식에 대한 추억마저 메말라간다. 특히 원룸에서 부엌은 사치다. 두세 칸짜리 조리대를 부엌이라고 정의하기도 애매하다. 설령 부엌이 잘 갖춰졌더라도 시간에 쫓겨 사는 현대인들에게 부엌은 침실과 화장실 보다 발길이 뜸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아이가 있는 전업주부라면 부엌은 또 다르게 다가온다. 시시각각 조여오는 가족의 배꼽시계에 맞춰 움직여야하기에 정신없는 전쟁터가 되기 십상이다. 부엌을 부엌으로 기억하기 힘든 요즘. 이화동에 있는 배오개 부엌박물관에서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 부엌을 기억하다

모노톤의 깔끔한 건물 외관과 연둣빛 잔디밭 위에 드문드문 놓인 흰색 철제 의자. 박물관이라기엔 어딘가 소박했다. 2층에 난 큰 창으로 말간 아이의 얼굴 같은 수많은 황해도해주백자와 마주한 순간, 이곳에서 부엌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리라 직감했다. 

 

▲ 박물관에 전시된 옛 찬장과 도마

사실 부엌은 상당히 ‘각’이 잡혀 있는 공간이다. 편안함을 주는 가구 보다는 스토브, 냉장고 등의 가전기기들이 들어서 있다. 배오개의 외관은 그런 부엌의 이미지와 닮아있다. 이곳을 처음 본다면 정겨운 느낌을 받기보단 정갈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차콜색 철제문을 열면 묵중한 부빙가 재질의 긴 바가 1층 공간의 중앙을 길게 가로지르고 있다. 최대 열 명까지 수용 가능한 홈바는 부엌이라는 공간에 대한 긴 물음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곧 그 뒤편으로 한국적인 가구 소반과 서양식 빈티지 제품들이 한데 섞여 눈에 들어왔다.

흰색 벽 위로 석쇠들이 액자 틀에 오롯이 담겨있다. 개중에는 조선시대 때부터 사용한 석쇠도 있다. 또 흰색의 철제 선반과 조리대, 흰 벽이 주는 차가운 느낌은 마룻바닥과 옛것 그대로의 서까래를 통해 금세 따뜻한 느낌으로 중화된다. 옛것을 그대로 기억하기 위해 보존해온 집의 골격과 전시품들은 오래전 퇴색된 부엌의 의미마저도 되찾아줄 것만 같다.

부엌은 다른 공간과 달리 ‘요리’라는 행위에 필요한 적당한 긴장감이 배어있다. 하지만 차나 간식, 배를 불릴만한 한 끼 식사와 같은 따뜻한 여유로움은 부엌을 통해야만 실현된다. 1층이 부엌과 다이닝룸이 함께 맞물려 있기 때문일까. 바 앞에 앉아 있으면 금방이라도 뜨끈한 국물요리가 놓일 것만 같다. 고개를 돌리면 큰 창 앞에 풍경처럼 일렬로 걸린 주방도구들이 보인다. 이런 작은 재치들이 배오개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 박물관에 전시된 옛 찬장과 도마



| 다름의 어울림, 아름다움


기름 램프 등의 서양식 빈티지 소품과 조선시대에 사용했던 석쇠, 시골집에서 볼법한 가마솥 등 세월을 뒤돌아보게 할 만한 물건들이 배오개에 있다. 몇몇 소품은 쇳대박물관의 관장이자 배오개를 운영하는 최홍규 관장이 해외에서 직접 구입한 빈티지 제품 컬렉션으로 채워두었다.

화장실 옆에는 골목 어귀에 버려졌던 낡은 도마가 작품으로 재탄생해 걸려 있다. 혹시 당신의 한 끼도 인생의 어느 골목 한 귀퉁이에 마냥 방치하지는 않았는지 떠올려보라. 직장인들로 붐비는 식당에서 쫓기듯 점심을 해결하고, 혼자 있는 주말에 라면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운 기억밖에 없다면 하나 귀띔해주겠다.

 

 


추후 배오개가 비스트로로 운영될 예정이다. 고추장 스파게티, 가지덮밥, 간장떡볶이의 딱 3가지 메뉴만 판매한다. 오래된 석쇠와 목재 골격이 각자의 위치에서 조화를 이루고, 동서양의 빈티지 제품이 한데 모여 조화를 이루고 있는 배오개에서라면, 이러한 메뉴는 음식의 맛과 공간의 멋으로 함께 어울릴 것이다. 또한 최대 10명까지의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거나 토론하는 공간으로도 운영한다고 한다.

소수에게만 허락된 조금은 특별한 비스트로이자, 음식을 나눠먹으며 자신들만의 추억을 만들어갈 수 있는 곳. 배오개에서라면 이화동의 높은 언덕을 올라야만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경치와 감성을 안고 기분 좋게 내려갈 수 있다. 

 

▲ '이화에월백하고'에서 만든 도마

배오개 부엌 박물관은 부엌의 역사나 음식의 기원 등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당신의 부엌과 당신의 음식에 대해 소담한 답을 찾아볼 수 있는 곳, 모노톤의 현대적인 겉모습과 달리 건물 내부에서 따뜻한 차나 간단한 음식을 기대하게 되는 곳이다. 

 

하루 빨리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이고 따뜻한 음식과 맛있는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져, 각자 자신들만의 배오개에 온기를 채울 수 있길 기대해본다.
 

▲ 종로구 이화동 '배오개부엌박물관'

 

 

▲ 1층 부엌

 

 

▲ 1층 주방 테이블

 

▲ 2층 전시룸  

 

▲ 2층 전시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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