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 건축가들의 가구

디자인 / 허재희 기자 / 2021-02-03 00: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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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호, 김선아, 박지민, 최준우
건축과 가구의 경계
사적 작업으로서의 가구

▲ 김선아 작가, 박지민작가, 최준우작가, 강덕호 작가


건축을 베이스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 보는 가구가 궁금했다. 그래서 네 명의 작가들을 모아 가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패널 : 강덕호, 김선아, 박지민, 최준우 / 진행 : 허재희 기자)

허재희  오늘 모이신 분들은 모두 건축 일을 하셨거나 여전히 건축 일을 하시면서 가구 만드는 활동도 병행하는 분들이에요. 진지하게 가구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김선아  저 같은 경우엔 10여 년쯤 건설회사에서 일하다 어학연수 목적으로 갔던 캐나다에서 가구를 배웠고, 한국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건설에는 협업의 메커니즘이 작용해요. 건설 현장 속에 있던 개인이 그 현장을 벗어나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죠. 그렇기에 제2의 직업을 찾아야 했는데, 적성에도 잘 맞으면서 건축공학이라는 베이스로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게 가구 만드는 것이었던 것 같아요.


최준우  저는 꽤 유명한 건축 사무실에 다녔어요. 그러면서 유명한 소장님들을 뵀는데, 그럴 때마다 그분들의 입지가 부럽기보다는 가구에서의 입지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씀하신 대로 건축은 협업 시스템이라 다른 업체들과 이견을 조율해야 하는 등 피곤한 일이 많았죠. 그래서 더 혼자 오롯이 다 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강덕호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하자면, 일단 저는 개인적으로 건축을 예술이라고 보지 않아요. 자본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적은 자본으로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가구를 선택하게 됐어요. 가구를 만드는 일은 예술 활동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경제활동으로서의 가구도 만들고 있어서 만드는 모든 가구가 작품으로서의 가구는 아니지만요.


박지민  다들 비슷한 케이스인 것 같아요. 앞에 분들이 말씀하셨다시피 가구는 자본 등의 영향을 건축보다 덜 받고, 개인이 혼자 컨트롤하는 과정이 대부분이에요. 구조적인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을 보면 가구를 작은 건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 건축을 하셨던 분들이 가구로 넘어오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요.


김선아  건축이 걸림돌이 됐던 적은 없나요? 가구를 만들고 있지만 건축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해서 괴로울 때가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처음 가구를 만들기 시작할 때 주위 분들이 왜 다리부터 만드느냐고 묻더라고요. 테이블 상판을 먼저 만들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말이죠. 그 뒤로는 일부러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오늘 가져온 가구는 잠자리에서 모티브를 얻은 거예요.

  

최준우  저도 비슷한 고민을 했어요. 디자인에 한계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가져온 의자를 만들고 나서 인식이 바뀌었어요. This is not a chair라는 이름의 작품인데 의자가 의자의 기능을 갖지 않아도 의자임에는 변함이 없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맞고 틀리고의 문제라기보다는 인식이 깨이는 계기였던 거죠.


박지민 항상 양면이 있는 것 같아요. 건축에서 받은 영향이 장점이 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한계가 되기도 하고. 처음엔 제 가구를 보고 건축적이라고 하는 게 이해가 잘 안 됐는데, 보다 보니 기능이나 구조에 대한 고려가 건축적인 면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건 체화된 거라 굳이 거리를 두려 하지는 않아요.

 


허재희 기자 건축만 하셨을 때 가구를 보던 시각과 가구를 직접 만들고 나서 가구를 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강덕호  사실 건축에서 가구는 아주 중요한 거예요. 원래는 가구 디스플레이까지 책임지는 게 맞죠. 그런데 가구 시장이 분할돼 있기도 하고 그걸 통합적으로 컨트롤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좀 따로 노는 경향이 있어요. 아예 배제되는 경우도 있고요. 무척 아쉬운 부분이죠. 그게 통합적으로 관리돼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구를 하고 난 뒤에 가구를 바라보는 시각이 엄청나게 달라졌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그 가구가 기능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건지 조형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건지에 맞춰서 디자인되면 된다고 생각해요. 가구 자체에 큰 의의를 두기보다는 그런 시각으로 보는 게 가장 정답이지 않을까요?


최준우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지금 있는 건축 사무실은 작가 개념의 사무실이라서 설계를 시작해서 납품할 때 보면 가구 디테일까지 모두 설정돼 있어요. 예를 들어 강의실을 설계하는 거라면 의자 설계까지도 저희의 일인 거죠. 기껏 공간을 설계해 놨는데 이상한 의자가 들어오면 속상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사실 사무실의 성격, 건축 비용, 클라이언트 등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이긴 해요. 그리고 보통 건축가들이 준공하고 건물을 봤을 때 가장 듣기 좋아하는 소리가 ‘항상 거기 있었던 건물 같다’는 거예요. 편안함을 주는 거죠. 저는 가구도 그런 가구가 좋은 것 같아요.


허재희 기자  그렇다면 지금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 원목 가구 시장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김선아  목공방이 굉장히 많이 생겨났다는 게 일단 눈에 보이는 변화인 것 같아요. 기계를 사려고 해도 기계가 없어서 못 살 정도로요. 요즘 쿡방이 트렌드인데, 이런 DIY 공방도 일종의 트렌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최준우  맞아요. 3~4년 사이에 그 수가 무척 많이 늘었어요. 또 하나의 특징은 목공과 전혀 무관한 전공인 분들이 많이 유입되고 있다는 거예요.


김선아  먼저 해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전업을 작정하고 체계적인 준비 과정을 거친 경우는 그나마 좀 다행인데, 그냥 나도 한 번 해볼까? 이런 생각으로 뛰어드는 분들이 많은 게 문제라면 문제이지 않을까 싶어요.


박지민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것도 목공의 저변을 넓힐 기회라는 생각도 들어요. 목가구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좀 낮은 편이잖아요. 목공을 하기 전까지는 저 역시 그랬고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든 목공방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지면 목가구에 대한 접점이 많아져서 목가구 산업에 대한 인식이 좀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생각도 들어요.


허재희  앞으로의 작품 활동 방향을 말씀해주세요.


강덕호  경제활동으로서의 가구와 작품으로서의 가구를 계속할 생각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작품으로서의 가구는 가구라기보다는 조형물에 더 가깝다고 보고 있어요. 가구에 한정하기보다는 기능을 다 무시하고라도 조형물로서의 가구를 만들고 싶어요.


박지민  저는 그냥 무작정 만들고 싶은 게 많아요. 그려 놓은 의자만 대여섯 개 되고요. 지금부터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려고 해요.


김선아  주문가구와 전시를 위한 작품 활동을 계속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엔 전시 작품이 주문가구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둘의 경계를 확실히 구분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원래 심플한 디자인을 좋아해서 어떻게 하면 그걸 극대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최준우  주위에 작가 생활을 하다 생계 문제로 다른 길을 걷는 친구들이 꽤 있어요. 저는 그냥 계속해서 가구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열심히 일해서 건축으로 수익을 내고 가구로 이상을 충족해야겠죠. 꾸준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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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호 작가
"가구는 예술이다" 


 


가구가 메인이고 건축이나 인테리어 일은 건축할 때 알던 친구들이 재미는 일이 있다고 하면 가끔 하는 정도다. 건축은 자본의 제약을 많이 받는 분야다. 자본에 휘둘리다 보면 예술이 되기 어렵다. 그래서 예술 활동과 경제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걸 찾다가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구 역시 형태와 구조의 문제를 풀어내는 건 건축과 거의 비슷해서 가구를 시작할 때도 크게 어려운 건 없었다. 궁극적인 목표는 전업 작가다.
기본적으로 아름다운 가구를 만들고 싶다. 그러려면 아름다움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가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아름다운 가구를 만들 수 없다. 요즘은 그 아름다움을 자연이나 어떤 현상에서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 자연에서 얻은 모티프를 가구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기능을 배제하고라도 가구를 넘어선 가구, 즉 조형에 가까운 가구를 만들고 싶다.

강덕호 :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으며, 프랑스 파리에서 Academy d'art paris-d'italie 과정을 밟았다. 2004년 한국에서 우드워킹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지금은 가구 브랜드 퍼니두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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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아 작가
"사람과 교감하는 가구"
 

 

 

건축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고 가구만 하고 있다. 어학연수로 갔던 캐나다에서 가구라는 걸 건축처럼 하나의 학문으로 공부하는 걸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서 가구와 연을 맺고 한국에 돌아와 국민대학교 목조건축센터 가구 디자인 과정을 밟았다. 2004년부터 가구디자인 스튜디오 다룸을 운영하고 있고, 매년 가구 그룹 슬로우 퍼니처 작가들과 전시회를 한다. 다가오는 4월에도 전시가 있는데, 나무와 다른 재료를 믹스매치 하는 작업이 생각보다 쉽지 고민이 많다.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주문 가구 작업도 같이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주문 가구라는 게 누군가의 공간을 모두 내 가구로 채우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 공간을 가치 있게 할 수 있는 가구인지를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내 가구가 어떤 공간에 놓았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감성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여긴다. 사용자와 교감하는 가구를 만들고 싶다.

김선아 :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쌍용건설 등에서 재직했다. 국민대학교 목조건축센터 가구디자인 과정과 한국전통공예건축과정 소모과정 연구반을 수료했다. 2004년부터 가구디자인 스튜디오 다룸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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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민 작가
"코리안 모던(Korean Modern)을 그리다"
 


 

가구가 메인이고 아주 드문드문 건축 일을 한다. 건축 일을 10년 정도 했는데, 아무래도 협업 시스템이다 보니 조율하는 일에 지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가구를 시작하게 됐다. 가구가 건축보다 쉽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고, 아이디어 구현 과정이 좀 더 간단한 면이 있다고 본다. 자본의 영향을 덜 받기도 하고 재료 공정까지 직접 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다.
내가 만든 가구가 한국 사람이 만든 가구 같은 느낌을 줄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늘 전통 기법이나 디자인적인 동시대에 어울리는 모던함으로 치환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렇게 말하면 한국적이라는 게 뭐냐는 질문을 받게 되는데, 조금 가볍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정말 작은 전통 모티브를 가구 안에 빠뜨려보는 거다. 구조적인 것을 변형해 보기도 하면서 한국인이 공유했던 옛 가구에 대한 향수를 가져오려는 시도다. 계속 그런 작업들을 이어나가려고 한다.

박지민 :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미국 휴스턴 Rice University, School of Architecture에서 건축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지금은 건축설계, 가구 제작 디자인 스튜디오 라이프인스탈로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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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준우 소장
즐겁고 진지하게 만드는 가구 




건축이 메인이고 가구는 개인적인 일상이다. 처음에는 두 가지를 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그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가구보다는 건축을 좀 더 잘하는 것 같아서 건축에 비중을 좀 더 두고, 가구는 즐겁게 이상을 실현하는, 취미보다는 조금 더 무거운 의미의 활동으로 남겨뒀다. 회사에 다니다 보니 가구에 아주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는 없지만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인 페스티벌에 나가는 등의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나만의 색을 정확히 찾아서 하나의 색으로 가야 할지,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걸 다 해보는 게 맞을지 고민이 많았다. 결론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렇게 만든 것들을 나중에 모아 보면 하나의 색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모던한 서양 건축을 하다 보니 가구에는 한국적인 정서를 녹이고 싶단 마음이 크다.

최준우 : 홍익대학교 가구디자인 석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건축설계사무소에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파리메종오브제,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청주국제공예비안날레 등 다수의 전시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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